본문 바로가기

기독문화/신앙에세이

신소망의 다른 이름, 극야(極夜)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내게 주변인들은 작가답지 않다고 말한다. 처음엔 나도 유별난 여름 사랑이 오랜 교직 생활 중에 학습된 것이라 여겼다. 쉼과 여행, 휴가와 수련회를 품은 여름방학을 기다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름을 좋아하게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낮이 긴 날들을 선호하는 내 성향 때문이다. 왜 그런지 퇴근 무렵에도 해가 쨍쨍한 여름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여름 새벽의 새 소리와 여름 저녁의 풀 냄새만으로 몸과 맘이 충만해진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다가올수록 상쾌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남들이 더위로 지긋지긋해하는 하루하루를 아껴 쓰고 싶을 정도다. 하여, 8월 말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짙어지고 하늘빛이 깊어질 때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꼭 십 년 .. 더보기
처자妻子이별바위 일본 나가사키현에 있는 히라도를 탐방했다. 400여 년 전 기독교 박해가 끔찍했던 곳이다. 순교자들이 처형당하기 직전에 가족과 이별했던 장소 ‘처자(妻子)이별바위’에 들어선다. 이곳 바위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품에 안아보고 싶도록 매끄럽고 윤이 난다. 탐방객들을 맞아주는 표정이 환하다. 입을 씩 벌리고 눈웃음을 머금은 듯한 바위. 그날의 슬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면서도 기품까지 풍긴다. 순교자들과 가족들이 이별을 앞두고 부둥켜안고 흘린 눈물에 지금까지 바위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흔적을 남기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던가. 유치환의 ‘바위’가 떠오른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더보기
훈련중 40일 새벽기도 작정 이틀째에 새벽을 깨우지 못했다. 마음이 허술해도 너무 허술했나 보다. 다시 시작한 지 삼일 만에 또 넘어지고, 또 다시 삼일 만에 패배했다. 일주일 동안 버둥거리기만 한 것 같다. 한 번 더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3일 째 저녁이었다. 다음날 새벽엔 폭우가 쏟아진다는 기상예보에 기다렸다는 듯 자포했다. 교회 가는 길에 건너는 지름길 외다리가 분명 범람할 것이기 때문에. 에움길로 가면 10분은 더 가야하기에 새벽의 금쪽같은 10분을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내 안의 방해꾼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 다음날 아침의 하늘과 땅은 햇볕으로 말짱했다. 베란다 창문을 뚫을 만한 한숨이 나왔다.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40일 중 구멍 난 새벽은 낮 시간에 메우기로. 그래도.. 더보기
바보 도둑 주차장 울타리 앞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목사님이 유독 감을 좋아하시는 데다 감꽃이며 감잎 단풍이 좋아 심어놓으셨다. 목사님은 감나무를 기특해하시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셨다. 오가는 길에는 일부러 주차장에 들러 눈길을 보내곤 하셨다. 해마다 감을 따서 며칠 잘 익혀놓았다가 성도들과 함께 점심 후 감 잔치를 하셨다. 태풍 소식이 왔다. 뉴스에서는 두 주 전부터 태풍의 위력을 계속 보도했다. 이미 태풍이니 홍수니 우리가 호되게 당한 일이 있기에 전국적으로 태풍준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특히 이번 태풍은 울산 땅을 휘저어놓을 거라는 소식에 목사님은 감나무 챙기는 일도 잊지 않으셨다. 쇠막대기 지렛대를 세우고 둥치에 묵직한 옷도 입혔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는 기도 속에 분명 감나무에 대한 .. 더보기
박경리 문학관을 찾다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의 발자취를 좇아 경남 하동으로 가는 중이다. 5월의 자연은 어느 곳을 바라봐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뭇잎마다 연한 색이 점점 진하여 지면서 싱그러움을 더했다. 길가에는 노란 얼굴로 활짝 웃는 금계국이 살랑살랑 어깨춤을 추면서 우리를 반겼고 아카시아 나무는 기다란 꽃대에 흰 꽃을 방울방울 달고 향기로 우리를 반겼다. 세 시간 남짓 걸리는 먼 거리를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곳은 선생의 삶과 문학의 정신을 기리고 기억하고자 2016년에 건립했다. 문학관 뒤로는 지리산의 한 줄기가 뻗어 내린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섬진강과 어우러진 악양의 넓은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이는 모두가 대하소설 토지의 주 배경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넓은 풍경.. 더보기
눈맞춤 근무하는 사무실에 화분 돌보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다. K는 꽃꽂이와 카페 공간에 있는 화병들을 관리한다. S는 사무실 정원에 딸린 꽃나무와 화분을 맡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연유도 이 때문이다. 생명을 유지시키고 더 풍성하게 관리하려면 마음 내킬 때만 둘러보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꽃에 따라 돌보는 손길도 달라야한다.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다. K 손에는 늘 주전자가 들려 있다. 기다란 주둥이에선 물이 출출출 흘러나오고 있다. 어린 머슴애가 밤새 참았던 오줌을 누는 것처럼 시원하다. 주전자를 들고 꽃꽂이 된 꽃들을 빙 둘러본다. 어느 순간 주전자를 놓고 꽃에 코를 쑥 집어넣기도 한다. 그러다가 화분을 햇볕 쪽으로 빙글 돌려놓는다. 꽃잎이 햇볕을 맛보기.. 더보기
임진강을 돌아보다 ‘하나님! 인종, 세대, 언어적 갈등이 해소되고 전쟁의 아픔이 그치게 하소서!’ 구약성경에는 130여 회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는 1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고통과 절규 속에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1950년 한국전쟁을 겪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다. 이제 살아있는 이산가족 1세대는 찾기 쉽지 않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므로 통렬한 이산의 아픔도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통일에 대한 염원이나 강한 의지도 과거처럼 강렬하지 않다. 낡은 이념과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통일을 바라볼 뿐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보여주는 장소인 임진강을 돌아보려 길을 떠났다. 서울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더니 파주로 향하는 자유로.. 더보기
신불산 나들이 신불산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억새밭에 낮게 내려앉았다. 쭉 뻗은 손끝에 하늘이 닿을 것만 같다. 울산의 12경답게 억새로 유명해서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는 많이 봐 왔는데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니 꿈만 같다. 은빛 솜털처럼 보드라운 꽃을 피워낸 억새는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억새꽃을 어루만진다. 목화솜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럽다. 귀를 기울이니 자기들끼리 몸을 부딪쳐 차르르르 차르르 소리를 낸다. 마치 나의 산 나들이를 반겨주는 팡파르 소리 같다. 얼마 전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차를 마셨다. 단풍철이 되어서인지 친구들은 산에 다녀온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친구들인데 내 마음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희희낙락거리는 것이 은근히 섭섭했다. 산.. 더보기
왜성에서 ‘왜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일본인 장수가 세운 성이라 왜성이라고 한다. 울주군 서생면 진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생포 왜성이 있다. 관광해설사가 일본에도 왜성의 흔적이 많지 않아 일본사람들도 다녀가는 곳이라고 한다. 내 고장에 낯선 일본의 흔적이라니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왜성은 해발 113 미터 정도의 높이에 위치해 있다. 북서쪽으로는 회야강, 동쪽으로는 진하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급격한 경사지 위에 세운 성이다. 강과 바다를 모두 살피고도 간단히 뛰어 올라올 수 없는 곳에 성을 꾸렸던 일본인 장수의 전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성을 오르는데 주변 정비 사업 진행으로 통행에 불편을 끼쳐.. 더보기
나답게 사는 법 2년째 우쿨렐레 수업을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회원 한 사람과 친해졌다.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다가 그분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그거 알아요? 내가 지금까지 똑같은 색깔의 티셔츠만 입고 온 거.” 생각지 못한 말에 전혀 몰랐다고 답을 했다. “괜찮아요. 다들 몰라요. 제가 2년간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였죠.”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남의 시선을 의식해 옷차림에 신경 써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 한 달은커녕 일주일 전에 만난 사람들의 옷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그러하듯 남들도 나의 옷차림에 관심이 없을 터였다.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장에서 몇 번 입지 않은 불편한 정장 같은.. 더보기
옹벽 위의 텃밭 뒷산이 무너져 내리지 못하도록 옹벽이 쳐져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옹벽 꼭대기를 한 남자가 왔다갔다 했다. 그가 신은 기다란 장화가 거미 다리처럼 부지런하더니 난간에 그물망을 쳤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물조리개로 물을 뿌렸다. 그동안 땅을 고르고 씨를 뿌렸던가 보았다. 옹벽 위 텃밭의 열매를 아래에서는 올려다볼 수 없었지만 날마다 높은 텃밭에 사는 그 남자의 얼굴은 점점 밝아 보였다. 여름이 되자 그가 짜놓은 난간의 그물망에 이파리들이 돋아나고 자랐다. 분명 그가 가꾸어 놓은 텃밭을 기운삼아 탯줄이 생긴 모양이었다. 얼마 안가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오이 하나가 숨은 그림 속 그림처럼 눈에 띄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았던 오이와 가지와 호박들이 줄줄이 입체그림처럼 불을 켜며 내 눈을 비추었다. 나는 한동안 .. 더보기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 선조들이 말씀하신 속담이나 격언이 그릇된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적게 받았거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같아서 그런 모양이다. 내가 자라온 마을은 주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김, 연, 한 씨가 오밀조밀하게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았다. 이장은 마을의 성씨 중 과반수를 차지하는 김씨 문중에서 연속으로 나왔다. 마을에서 이장이라는 직함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 집안은 그걸 큰 자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장 뽑는 날짜가 다가오면 연 씨는 한 씨의 표를 얻기 위해 물질 공세를 할 때가 많았다. 선출된 이장은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살림을 살피며 관심을 가졌다. 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