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새벽기도 작정 이틀째에 새벽을 깨우지 못했다. 마음이 허술해도 너무 허술했나 보다. 다시 시작한 지 삼일 만에 또 넘어지고, 또 다시 삼일 만에 패배했다. 일주일 동안 버둥거리기만 한 것 같다.
한 번 더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3일 째 저녁이었다. 다음날 새벽엔 폭우가 쏟아진다는 기상예보에 기다렸다는 듯 자포했다. 교회 가는 길에 건너는 지름길 외다리가 분명 범람할 것이기 때문에. 에움길로 가면 10분은 더 가야하기에 새벽의 금쪽같은 10분을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내 안의 방해꾼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 다음날 아침의 하늘과 땅은 햇볕으로 말짱했다. 베란다 창문을 뚫을 만한 한숨이 나왔다.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40일 중 구멍 난 새벽은 낮 시간에 메우기로. 그래도 최선을 다해 새벽을 깨우기로.
새벽기도를 하다 보니 아침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고 당장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엔 중학생 4명이 달리고 있다. 코치가 응원석 계단 위에 서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이다. 운동장 한 바퀴가 1000미터 넘어 보인다. 학생들은 여덟 라인 중 1라인을 달리고 있다. 서로의 간격은 너무나 커서 누가 1등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8라인에 자리를 잡고 걷기 시작한다.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하고 매서운 말투. 약간의 욕도 섞여 있어 내 심지가 살짝 뒤틀린다.
한 학생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코치 앞에 바들거리며 서 있다. 묻는 말에 단답만 할 뿐이다. 훈련을 시키려면 선생이 강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가보다, 라는 생각에 나의 아니꼬운 시선을 거둔다. 그런데 끝없이 달리는 학생들의 숨이 곧 넘어갈 듯하다. 무더위에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침을 질질 흘리며 콧구멍에서 뜨거운 바람을 쏟아내는 소 같다. 또 얼굴을 하늘로 치켜들고 눈썹을 칼날같이 세운 채 비 오듯 땀을 흘려대는 모습이 육체는 사라지고 영혼만 날아다니는 듯하다. 천천히 뛰면 코치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운동장이 쩌렁 울리도록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나는 심기가 달아오르고 분이 펄펄 끓어오른다. 코치가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주면 좋겠다. 아주 짧은 거리라도 학생들과 같이 뛰어줄 순 없는가. 운동장을 걸으며 코치 앞을 지날 때마다 괜히 그의 얼굴을 노려본다. 왠지 족제비 같다. 저 족제비에게 당한 학생들이 쓰러지거나 심장이 터져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나 싶다.
학생 한 명이 내 옆을 스칠 때다.
“학생, 이렇게 달리는 거 엄마도 알고 있나?”
들은 체도 않고 지나가 버린다. 또 한 학생이 지나친다.
“학생, 달리는 거 엄마도 알고 있나?”
“예.”
“그렇구나, 너희들 훈련 중이구나.”
학생은 벌써 저만치 앞으로 달려간다.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피겨 왕 김연아도, 축구 왕 박지성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발레리나 강수지도 떠오른다. 이 학생들에게도 이만한 훈련이 필요한가보다, 라고 생각을 바꾼다. 저 족제비 코치도 훌륭하다고 생각을 바꾼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워 보여 마음이 탄다. 어린 학생들의 고된 훈련을 지켜보자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와중에 한 아저씨가 학생들이 달리는 1라인에 자릴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저 뼈다귀 같은 사람 좀 봐라, 눈치코치도 없이 학생들한테 방해되게. 아이구 정말!’
아니나 다를까 학생이 뼈다귀를 피해가려는데 뼈다귀는 그것도 모르고 학생이 피하려는 2라인 쪽으로 주춤 비켜서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보니 덕분에 학생이 3초쯤은 휴식을 취한 것 같다. ‘아저씨, 참 잘했어요!’ 저 뼈다귀아저씨한테도 마음이 바뀐다. 저 지혜로운 아저씨가 한없이 고맙다.
코치는 아까보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다. “이제 세 바퀴!”라고 말하니까 코치 앞을 지나가던 학생이 겨우 한 가닥 남은 목소리로 “세 바퀴, 세 바퀴.”라며 앞만 보고 달린다. 또 한 학생에게는 “너는 이제 나와라!”고 하니 학생이 기계처럼 멈춰 선다. 한 학생은 넘어졌는지 다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 코치가 “화장실 가서 씻어!”라 하니 학생은 화장실로 달려간다.
내가 운동장에 온 지도 벌써 한 시간이 다 돼가고 있다. 코치 앞에는 학생 세 명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고, 키가 제일 작고 몸이 무척 마른 학생은 아직도 달리는 중이다. 나는 운동장을 빠져나오면서 이 훈련 끝에 학생들이 빛나는 운동선수들이 되기를, 코치도 훌륭하고 명예로운 코치가 되길 기도한다.
40일 작정 새벽기도는 이제 중반쯤에 이르렀다. 이를 악물고 달리던 학생들 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를 기도로 응원하는 사람들, 또 간혹 뼈다귀 같은 방해꾼의 방해까지도 나를 밀어주는 힘이 되어 이번 작정 새벽기도에 승리하길 기대한다. 그 학생들에게나 나에게나 훈련이 단연코 헛되지는 않을 것, 분명 한 계단을 올라서는 승리의 기쁨을 맞으리라.
수필가 설성제(북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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