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의 발자취를 좇아 경남 하동으로 가는 중이다. 5월의 자연은 어느 곳을 바라봐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뭇잎마다 연한 색이 점점 진하여 지면서 싱그러움을 더했다. 길가에는 노란 얼굴로 활짝 웃는 금계국이 살랑살랑 어깨춤을 추면서 우리를 반겼고 아카시아 나무는 기다란 꽃대에 흰 꽃을 방울방울 달고 향기로 우리를 반겼다.
세 시간 남짓 걸리는 먼 거리를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곳은 선생의 삶과 문학의 정신을 기리고 기억하고자 2016년에 건립했다. 문학관 뒤로는 지리산의 한 줄기가 뻗어 내린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섬진강과 어우러진 악양의 넓은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이는 모두가 대하소설 토지의 주 배경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넓은 풍경에 잠자고 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와락 일어선다. 지적지적 목청을 뽑는 새소리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 같았다. 어디에선가 시작되어 온 실바람은 어머니 품속인 양 부드러웠다.
문학관 마당에 들어서니 이집의 주인 윤씨 부인과 아들 최지수, 그리고 며느리인 별당 아씨, 서희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다. 다소곳이 서있는 작가의 동상은 책을 읽다가 손님 오는 소리에 바쁘게 나온 듯 두 손에 책이 들려 있다. 뿔테 안경에 머리를 뒤로 끌어올려 고정한 차림이 여느 중년 아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연 이분이 토지에 600여 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의 삶을 만들고 세밀하게 묘사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실내는 5부작으로 된 토지 전작을 비롯하여 김 약국의 딸들, 불신 시대, 성녀와 마녀 등 작가의 여러 저서와 현대문학지 그리고 생전에 쓰시던 유품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26년간 집필했다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지는 ‘토지’ 책이었다. 동학농민전쟁, 을사늑약, 청일전쟁, 간도협약, 만주사변 등 우리 근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시대적 배경으로 전개되는 대하소설이라 생각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여겨졌다.
눈길이 가는 또 하나. 육필(肉筆)원고와 낡은 돋보기였다. 돋보기는 손잡이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아마 선생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글 쓰는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닳은 돋보기에서 선생의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작을 쓰기 위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읽고,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쓰고 또 썼을 것이다.
진열장에는 선생이 피웠다는 담배와 재떨이도 있었다. 그녀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아버지가 새 여자와 장가들고 소박맞은 어머니와 유년 시절을 외로움 속에서 고통스럽게 지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얼마 되지 않아 6.25사변으로 남편을 잃었으며 아들까지 사고로 하늘나라에 보냈다. 그러니 담배 한 모금은 그녀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양약과 같았을 것이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문학관을 나오려는데 저쪽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궁금증이 일어서 가 보니 원고지를 직접 써보는 체험코너가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들이 마치 선생의 채취가 묻어있는 책과 원고지, 그리고 펜 같아서 반가웠다.
문학관을 나오면서 박경리 선생의 동상을 다시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가족과 생활하기 위한 논과 밭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농사를 짓기 위하여 남편이 해야 할 쟁기질을 하고 모를 심고 밭을 갈았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없었다.’라는 선생의 글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어찌 보면 작가의 유년시절 환경이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부모님의 좋지 않은 관계에서 도피처로 찾은 것이 독서가 아니었다면 대하소설인 토지와 그 밖의 많은 저서를 엮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독서량이 양식 곳간을 채워서 5부 16권이라는 방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 역사가 굴절된 시대의 상황과 인간의 삶 그 보편성을 탐구하여 폭넓게 그려낼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거침없이 탄탄대로 잘 나가는 사람보다 오늘 만난 작가처럼 시련을 겪은 이가 좋다. 왠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온 사람의 삶을 만난다는 건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등불이 될 수 있다.
선생님의 독백처럼 나무판에 새겨진 글이 생각난다.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김용숙 집사(울산하늘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