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울타리 앞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목사님이 유독 감을 좋아하시는 데다 감꽃이며 감잎 단풍이 좋아 심어놓으셨다. 목사님은 감나무를 기특해하시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셨다. 오가는 길에는 일부러 주차장에 들러 눈길을 보내곤 하셨다. 해마다 감을 따서 며칠 잘 익혀놓았다가 성도들과 함께 점심 후 감 잔치를 하셨다.
태풍 소식이 왔다. 뉴스에서는 두 주 전부터 태풍의 위력을 계속 보도했다. 이미 태풍이니 홍수니 우리가 호되게 당한 일이 있기에 전국적으로 태풍준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특히 이번 태풍은 울산 땅을 휘저어놓을 거라는 소식에 목사님은 감나무 챙기는 일도 잊지 않으셨다. 쇠막대기 지렛대를 세우고 둥치에 묵직한 옷도 입혔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는 기도 속에 분명 감나무에 대한 부르짖음도 있었으리라.
기적이 일어났다. 태풍이 빈 수레처럼 지나간 것이다. 다음날 멀쩡한 세상을 보고 목사님은 감나무에 달려가 얼싸안고 기뻐하셨다. 그날부로 감들도 잘도 자랐다. 목사님은 이제 얼마 후면 감을 따려고 마음먹고 계셨다.
그런데 나무에 감 몇 개가 보이지 않았다. 목사님은 단번에 사라진 감을 알아보셨다. 잘못 알 리가 없는데 싶어 CCTV를 돌렸다. 늙수그레한 부부가 와서 감을 따는 장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목사님은 쯧쯧 혀를 차시고는 나머지 감이 좀 더 익기를 기다리셨다. 며칠 후였다. 나머지 감 서른아홉 개가 싹 사라져버렸다. 목사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셨다. 다시 CCTV를 돌려보니 그날 그 부부가 커다란 가방을 벌려놓고 감을 따 담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그 부부는 불룩한 가방을 태연하게 맞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목사님이 고민에 잠기셨다. 촛대를 훔친 장발장이 떠오르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벗어주어라, 오 리까지 가달라면 십 리라도 함께 가주어라 등등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끓는 속을 태우셨다. 그런 중 주차장 앞을 지나가시다가 그 부부도둑과 맞닥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간 가슴에 맺혔던 울화가 힘센 구렁이처럼 느리게 올라왔다.
“그래, 감은 잘 드셨는지요?”
부부는 그만 숨이 멎는 듯했다.
“아, 그게……, 죄, 죄송하게 됐습니다.”
“감은 어차피 드신 거고, 교회 나오세요.”
그렇게 도둑을 잡아놓고 면전에다 대고 교회 나오라니, 어느 도둑이 그런 용서를 받아들이고 교회에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감히 감주인 앞에 어떻게 고개 들고 드나들 수 있단 말인가. 목사님은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모양이셨다. 목사님 심장도 울렁울렁, 부부도둑도 두근두근.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부부도둑은 돌아갔다.
목사님은 CCTV에 녹화된 감 도둑을 삭제하시면 말씀하셨다.
“무섭지요? 우리 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때가 있으니 잘 살아야겠지요?”
요즘은 몇 초에 한 번씩 우리 모습이 찍히고 있다. 내 모습은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 눈앞에 있는 사람 앞에서야 단정한 모습으로 걸음도 표정도 반듯하려 하지만, 혼자 있으면 금방 흐트러지고 마는 자세에다 코딱지도 파고 남의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입맛을 다시기도 하겠지. 주인 없는 들꽃에 눈독을 들이다 한 움큼 꺾기도 하고. 세상을 굽어보시는 그분이 내 눈앞에 안 보이시니 탐심과 죄악을 수시로 드러내곤 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데다 그분은 사람들 앞에 나의 죄를 무지막지 드러내서 난처하게 하시진 않으시니.
아마 그분의 CCTV에 차곡차곡 녹화시켜 어느 날 내 눈앞에서 그 장면들을 돌려보시는 것은 아닐까. 감 도둑부부처럼 찍 소리 못하고 그 부끄러움 감당치 못해 스스로 까무러치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지난날을 되돌리며 떨리는 마음으로만 산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제대로 살 것인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뒤엣것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이제 앞만 보며 달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분이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밖에 나를 지킬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성경엔 그분께 잘못을 자백하면 그 죄를 동(東)에서 서(西)로 던짐같이 기억도 아니 하시겠다고 씌어있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고 그분 스스로 한 말씀을 변개하지 않으시니 그걸 믿고 나아가는 게 상책이다.
사실 땅의 모든 도둑들은 바보도둑들이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도둑들. 아무도 보는 이 없어도 하늘이 보고 있으니 우리 인생의 결산일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
싹 털리고 빈털터리가 된 감나무를 쳐다보면서 목사님은 이제 웃음이 난다고 하신다. 감나무에 재미를 붙이신 목사님이 울타리 한 구석진 곳에, 남 눈이 잘 가지 않는 곳에 또 한 그루의 감나무를 심어놓으셨다. 아직 이 어린 감나무가 감 여남은 개를 잘 건사하는 중이다. 어느 점심식사 후 이 감들을 내놓으시겠단다. 골고루 한 쪽씩은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설성제 전도사 북울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