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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신소망의 다른 이름, 극야(極夜)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내게 주변인들은 작가답지 않다고 말한다. 처음엔 나도 유별난 여름 사랑이 오랜 교직 생활 중에 학습된 것이라 여겼다. 쉼과 여행, 휴가와 수련회를 품은 여름방학을 기다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름을 좋아하게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낮이 긴 날들을 선호하는 내 성향 때문이다. 왜 그런지 퇴근 무렵에도 해가 쨍쨍한 여름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여름 새벽의 새 소리와 여름 저녁의 풀 냄새만으로 몸과 맘이 충만해진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다가올수록 상쾌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남들이 더위로 지긋지긋해하는 하루하루를 아껴 쓰고 싶을 정도다. 하여, 8월 말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짙어지고 하늘빛이 깊어질 때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꼭 십 년 전 7월,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를 돌며 북국의 백야 속에 푹 잠겨보았다. 낮이 계속되는 여름의 백야(白夜)현상과 밤이 계속되는 겨울의 극야(極夜)현상은 북유럽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북유럽은 여름이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7월에 여행을 떠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종일 풍성한 햇빛을 만끽하고 싶었고, 어둠이 틈타지 못하는 긴 하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인근 호텔에 투숙했을 때, 밤 열한 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환한 풍경 때문에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은 무척 피곤한데 뇌의 각성은 새벽까지 계속됐다. 막상 체험하고 보니 어둠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아니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고난이 없다고 아름다운 인생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깊이 묵상하게 됐다. 하얀 밤을 뜬눈으로 보내면서 문득 북국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충만한 백야 속에 있다는 건 머지않아 극야도 찾아온다는 뜻일 터였다. 종일 캄캄한 극야가 찾아오면 북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내는지 궁금했다. 그 며칠 전 오슬로 미술관에서 감상했던 뭉크의 그림 ‘절규’가 새삼 마음에 와닿았고, 단편소설「이마고 imago」를 창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극야 기간의 노르웨이 트롬쇠 지역 오후 2시경 (사진=위키백과)

 극야가 찾아오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오후 2시에도 등을 켜야 할 만큼 캄캄하다. 태양은 지평선에 떠오르지 않고 어둠과 추위 속에서 분위기는 우울을 넘어 암울에 이른다고 한다. 시민 중 일부는 어둠을 견디지 못하고 햇빛이 넘실대는 남프랑스나 이탈리아로 긴 겨울 휴가를 떠난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북유럽 처녀들은 어둠이 절정에 달하는 동지(冬至)가 되면 하얀 드레스에 촛불 꽂은 화관을 쓰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밤을 새운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몸을 등불로 만들어 일 년 중 가장 길고 짙은 밤을 극복하려는 풍습일 테다. 동시에 다음 날부터 밤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축하하는 풍습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 소망의 동의어 같은 하지(夏至)는 일 년 중 가장 밝은 날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이제 곧 어둠을 향해 나아가야 할 날이기도 하다. 반면 절망의 동의어 같은 동지(冬至)는 어둠의 절정이지만 바꿔 표현하면 다시 밝음을 향해 나아갈 날인 것이다. 오히려 극야가 소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형통할 때 교만하지 말아야 할 이유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십 년 전 북국의 백야에서 보고 돌아왔다. 여행은 삶의 일부지만 삶 전체를 투영해 보여 줄 때가 많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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