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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우위 본능의 극치, 베르사유

 

  얼마 전 한 문우가 내게 인스타그램 활동을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소설작품으로 독자와 소통하기에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며 자신도 얼마 전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간곡한 조언에 SNS의 순기능을 믿으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보았다. 이미 출간한 다섯 권의 책 사진을 올리고 지인 몇몇과 친구가 되었지만, 성정에 맞지 않아 며칠 만에 비공개로 전환해버렸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쏟아지는 내용들이 인간 세포에 새겨진 지독한 욕망 같아 불편했다. 많은 경우, 자신이 가진 부와 아름다움이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했다. 물론 개인의 추억 저장이나 진솔한 삶의 공유, 선한 목적의 연대 등 순기능도 있겠지만 곳곳에 과대 포장과 허세가 난무했다. 자기표현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고 죄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 표현이 비교의식에 기반할 때 한계가 없다는 점일 테다. 그러니 상대적인 우월감이든 열등감이든 결국은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 

  우위 표현의 극치를 보여주는 여행지라면 베르사유 궁전이 먼저 떠오른다. 이십여 년 전 파리 여행 중에 가까운 베르사유 궁전도 둘러보게 됐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으며 자란 우리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가 자신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했다.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왕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화려한 건물인데 3만여 명의 인력이 50여 년에 걸쳐 완공했을 정도다. 육만 제곱미터의 방대한 면적에 2300여 개의 객실과 1200개가 넘는 벽난로, 1400개의 분수 등 유럽 내 궁전 중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휘황찬란한 거울과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거울의 방(사진=나무위키)

  베르사유 궁전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스트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딸이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녀는 역사에 사치의 대명사(다분히 편견도 포함되었지만)로 각인되어 있다. 화려함의 압권은 연회가 열렸던 ‘거울의 방’으로, 벽에 걸린 휘황찬란한 거울과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거울의 방’ 남쪽에 그녀의 거처였던 ‘평화의 방’이 있는데 화려한 색감과 소품들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현재를 살고 있다면 아마 인스타그램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적 결말 때문인지 궁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씁쓸했다.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화려하다니……, 그래서 뭐?’라는 자문이 계속 피어올랐다. 지극히 화려한 외관이 그 속에 몸담았던 인간의 초라한 내면을 가리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프랑스혁명이라는 격랑 속에 끝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져버린 지극히 화려한 꽃이었다. 궁전의 정원으로 나가는 계단에 서서, ‘아무리 극적인 소설도 인간의 신산한 삶을 따라가지 못한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지인의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그때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참 뒤 단편소설 <신데렐라 슈즈>를 쓰면서 문득 마리 앙투아네트가 연상됐다. <신데렐라 슈즈>는 내면의 결핍이 화려한 구두 수집으로 나타난 한 여인의 이야기인데, 여인의 초라한 자아가 마리 앙투아네트와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테다. 다들 초라한 내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인생의 외양을 더 화려하게 꾸미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할 때 안전한 인생을 보장받았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한 송이 꽃처럼 연약한 게 인생이다. 연약한 인생이 상대적 우위 본능에서 자유 할 수 있는 비결은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것’뿐이다. ‘하루를 천 년의 무게로 살아가되 천 년을 하루처럼 바라볼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눈’이야말로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가치일 테다. 아름다워 보여도 지극히 초라하고, 초라해 보여도 실상은 아름다운 인간의 정체성이란 하나님의 눈 안에서만 바르게 해석될 수 있으리라. 존재의 초라함을 고백할 수 있는 겸손과 존재의 소중함을 감사할 수 있는 소망이 인스타그램 안에서도 자주 발견되면 좋겠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특별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속 인물과의 생생한 조우다. 그들이 남긴 그림자에서 인생의 진실을 간파할 수 있다면 그보다 유익한 선물은 없을 테다. 다양한 인생을 만날 수 있기에 여행은 매번 설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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