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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열정의 두 얼굴, 코린토스

  성형수술 전후의 변화를 다룬 동영상이 유튜브 조회 수백만 회를 상회하곤 한다. 주목받지 못하던 얼굴이 몇 번의 성형수술로 드라마틱한 개선을 거듭한 결과 추앙받는 여신이 되었다는 광고성 내용이다. 결론은 ‘평범한 당신도 여신이 될 수 있으니 지금 당장 수술대에 오르라’는 주문과도 같다. 여성들이 가진 미의 욕구와 신화의 환상 이미지를 섞은 콘텐츠에 구독자들은 열렬하게 반응한다. 

  아름다움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이 ‘여신의 탄생’이라는 헛된 열정으로 연결될 때 자아 숭배로 오염될 수도 있다. 세상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프로디테’나 로마신화의 여신 ‘비너스’를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추앙하지만,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상 숭배와도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의 총화’를 상징하는 ‘미의 여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이 그리스의 코린토스 땅이었다.

건물들의 잔해 속에 수천 년의 시간이 그대로 고여 있는 듯 했다.

  오 년 전, 발칸반도 여행 중에 코린토스(성경의 고린도)를 방문했다. 과거 번영했던 향락 도시여서 화려한 면모를 상상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고대의 영광은 사라지고 돌무더기만 남은 적막한 땅이었다. 당대에는 아름다웠을 이오니아풍 건물들의 잔해 속에 수천 년의 시간이 그대로 고여 있는 듯했다. 옛 도시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 터였다. 교역과 상업이 발달한 항구도시 한가운데에서 환락의 꽃이 됐던 신전 터는 해발 575m의 아크로 산 정상에 있었다. 신전에서 아프로디테를 동경하며 온 마음으로 제사하던 천여 명의 여 사제들은 겐그레아 항구와 레카이온 항구를 통해 외국 선박이 들어오면 종교적 매음을 통해 돈을 벌고 외모를 치장했다고 한다. 그녀들에게 ‘아프로디테’ 여신이란 미(美)와 부(富)를 모두 가진 선망의 대상, 즉 이상적인 자아의 형상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중에 돌아와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가, 고대 근동 지방의 풍요의 여신 ‘아세라’가 바빌론의 ‘이슈타르’로,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로, 더 나아가 로마의 ‘비너스’로 진화되고 변모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마신화 속 ‘비너스’ 역시 시간을 따라 외적 변형을 거듭해가며 현대 사회에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비너스가 대중매체와 SNS의 여신으로 진화해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통찰은 상상에 불과한 것일까. 얼굴만 바꾸었을 뿐 실체는 그대로인 여신의 변형은 아무래도 성형수술의 원리와 흡사해 보였다. 그 뒤 자아 숭배를 주제로 장편소설 <버블 비너스>를 창작했는데, 자아를 증명하기 위해 성형수술에 집착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 소설을 통해 주인공 여성의 자아가 풍요의 여신 ‘아세라’와 맞닿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우상 숭배의 가장 큰 함정은 자아 속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여행지 코린토스에서 헛된 열정만 본 건 아니었다. AD 50년경, 한 남자가 아테네(성경의 아덴)를 떠나 그 땅에 도착했다. 그는 2차 선교 여행 중이었던 바울 사도였다. 타락의 도시에 도착한 바울 사도는 일 년 반 정도 자비량으로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 유적지 아고라 광장 중앙에 그가 설교했던 돌 연단이 있는데, 그곳에 서니 복음을 설파하는 사도의 모습이 이천 년의 시간을 넘어 시현처럼 다가왔다. 우상 숭배로 물든 도시에서 그는 황폐한 땅을 새롭게 하실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꿈꾸었을 테다. 단순히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복음의 매력이 그의 열정을 사로잡았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자아로 살아나는 ‘존재의 혁명’이야말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인간의 열정은 그 시선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생명의 역사를 이루기도 하고 자아 숭배에 빠지게도 한다. 의식적으로 부단히,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에 시선을 맞출 때 그 맑은 눈동자 속에서 생명의 역사는 시작될 수 있을 테다. 나의 자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도록 일상 속에서 기도와 말씀 묵상에 힘쓸 일이다. 

 여행은 앞서간 이들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일이다.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흔적을 남긴다. 타인과 생명을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발견할 때는 매번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된다. 돌무더기로 남은 코린토스에서 세속적 열정을 압도하는 순교자의 열정을 만난 건 은혜였다. 내가 밟는 땅이 누군가의 열정이 스며든 곳임을 발견하게 될 때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