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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배려하는 삶이 아름답다(김금만) 배려에는 온유, 인내, 겸손, 용납 같은 성품이 포함된다. 배려하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참 모습이다. 나는 배려와 이해로 살아왔던가 자문해 본다. 내 중심적인 사고를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많았다. 부부간은 물론 형제 자녀 간, 친구 간에도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다. 내 의견에 부합되는 정보만 선택해 궤변으로 내 편이 되기를 강요할 때도 있었다. 나의 주장에 반대되는 정보는 배척했다. 실체적인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추구했다. 정보를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편향에 빠지기도 했다. 나를 옹호해 주는 의견은 귀에 쏙쏙 들어왔지만 반대되는 의견은 불편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무자비한 잣대를 들이대려 했다. 이성이 아닌 감정적인 생.. 더보기
발자크와 함께 독일에 온 김에 베를린은 한번 들렀다 가야지 싶었다. 함부르크를 떠나기 며칠 전, 우리는 급하게 뜻을 모아 인터넷으로 다음날 아침 6시30분 발 열차표를 예매했다. 갑자기 계획한 마지막 여정을 기대하며 새벽길을 나섰다. 초행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우리 모습이 긴장한 소부대 같았다. 중앙역에 닿았다. 전광판에는 아직 우리가 탈 베를린 행 열차의 선로번호가 뜨지 않았다. 출발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우리 뒤차들의 번호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속수무책 전광판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출발 십여 분 정도를 남겨두고 빨간 불빛만 깜빡거리던 전광판에 안내 글자가 떴다. ‘6시30분 발 베를린 행 열차 실패!’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햐아! 입이 벌어졌다. 안내소를 찾아갔다. “아임 쏘리!”.. 더보기
양탕국 홍 선생 그는 눈물의 둑이 터져버린 원인도 의미도 몰랐다. 그즈음 했던 일이란 하염없이 걷는 것뿐이었다. 머릿속은 텅 비었고 가슴엔 휑한 바람이 불어 한곳에 붙박여 있기가 힘들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어 눈물이 내는 길을 따라 걷기만 했다. 터진 눈물은 골목을 넘어 대로를 적시고 사직운동장을 뒤덮은 함성마저 삼켜버렸다. 세상은 아득한 물 속 같았다. 그 깊은 곳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여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잠을 자는 중에도 눈물이 흘러 아내가 수건을 들고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수 개월이 흘렀다. 그날도 사직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며 앞을 가린 눈물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조차 느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수리를 치는 음성 하나가 번개처럼 떨.. 더보기
사이 석주들이 살고 있는 어둠 속을 걷는다.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린 물 한 방울에 온몸이 움칫한다. 카르스트지형이 만들어지던 아득한 때부터 이 순간까지 포스토이나 동굴에 돌이 자라고 있다. 위아래에서 스며든 물이 돌의 양식이다. 물속에 든 탄산칼륨을 먹고 종유석과 석순이 석주를 꿈꾸며 자란다. 1mm가 자라는 데 일 년이 걸린다고 한다. 항간의 길이를 재는 자로 돌의 시간을 측정하다니, 부질없다. 이미 석주가 되어 옆으로 지경을 넓혀나가는 것들도 있으니 이 동굴의 나이를 계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사람이 기다리거나 참아낸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수만 년의 시간 속을 돌며 숨 한 모금 쉬었다 갈 뿐이다. 스쳐가는 아쉬움에 두 팔을 뻗어.. 더보기
그녀가 어김없이 마중을 나왔다. 도착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상경한 지 반백년이지만 자갈치 아지매 억양은 그대로요, 자식 보러 나온 어머니처럼 양손에는 불룩한 가방을 들었다. 그녀의 가방 속, 뻔했다. 보나마나 모임에서 만날 회원들의 먹거리와 또 분명 나에게 줄 무엇이 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우리가 머물 인사동 골목에는 마트나 편의점 찾기가 힘들어 간식거리를 좀 챙겨왔다고 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어떻게 짐 꾸러미를 들고 다니는지 나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늘 짐을 만들어 다니는 그녀. 오후 햇살이 골목을 한창 누비는 시간, 예약된 홀에서 「아하브」 문학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 이름처럼 하나님.. 더보기
어떤 인연 산과 들은 봄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여기저기 꽃 축제가 한창인 요즘,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녀는 우리가게에 손님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도시로 이사 가서 가끔 만나는 친구다. 친구가 되기까지 그 간의 풍경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첫 만남 때 부드럽지 못한 표정과 안 좋은 모습으로 언성을 높인 일이 나를 민망하게 한다. 주방용품을 파는 그릇가게일이 서툴러 손님응대에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김장철이라 가게는 손님들로 붐볐다. 그날도 김장용 소쿠리와 고무통을 사러 온 손님이 에누리를 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적정 가격을 제시했지만 더 낮은 가격을 요구했다. 물건을 팔 수 없었다. 공손하게 다른 가게에서 그 금액에 맞는 걸 찾아보길 권했다. 그래도 가격을 낮춰 줄 것을 요구하며 버티었.. 더보기
한(限) 아침 댓바람부터 휴대전화기가 울린다. 희수(喜壽)를 넘어선 언니의 전화다. 집에서 키운 염소를 내놓을 테니 형제들끼리 모이자고 했다. 때때로 칼국수 반죽을 밀고도, 고구마, 자반고등어를 굽고도 동생들을 불러 먹이며 넋두리를 늘어놓던 언니다. 이번에는 시골에서 재산 가치가 큰 염소까지 선뜩 내놓는 것으로 보아 언니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썩 내키는 초대는 아니다. 언니와 나는 맏이와 막내로 나이 차이가 크다. 일거리가 많은 엄마를 대신하여 키웠기 때문에 정이 남달랐다.그런 언니는 키가 작고 배우지 못했다고 좋은 혼처를 버리고 손바닥만 한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촌으로 시집갔다. 가진 것은 없어도 행복하게 사니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잘 해주던 형부가 세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