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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한(限)

아침 댓바람부터 휴대전화기가 울린다희수(喜壽)를 넘어선 언니의 전화다집에서 키운 염소를 내놓을 테니 형제들끼리 모이자고 했다때때로 칼국수 반죽을 밀고도고구마자반고등어를 굽고도 동생들을 불러 먹이며 넋두리를 늘어놓던 언니다이번에는 시골에서 재산 가치가 큰 염소까지 선뜩 내놓는 것으로 보아 언니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썩 내키는 초대는 아니다.  


언니와 나는 맏이와 막내로 나이 차이가 크다. 일거리가 많은 엄마를 대신하여 키웠기 때문에 정이 남달랐다.그런 언니는 키가 작고 배우지 못했다고 좋은 혼처를 버리고 손바닥만 한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촌으로 시집갔다. 가진 것은 없어도 행복하게 사니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잘 해주던 형부가 세월이 흐르면서 술병을 끼고 다녔다. 농번기에 취기가 오르면 빈둥빈둥 놀다가 이유 없이 언니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언니는 벙어리처럼 대꾸도 없이 밭고랑에 묻혀 일만 했다. 그 밑에 자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떠밀기만 해도 나가떨어질 듯 비실거리는 형부에게 꼼짝 못 하는 것이 야속했다. 방학이 되면 종종 가던 언니 집에 발길을 끊었다. 언니도 삶에 지쳤는지 놀러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언니는 가끔 산등성이를 넘어 시오리 길을 걸어어느 때는 밤늦게 어느 때는 이른 새벽에 집에 왔다그때마다 엄마의 얼굴빛은 어두웠다바쁜 농사철인데도 방문을 닫고 오랫동안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어린 가슴에도 언니가 형부와 좋지 않은 관계로 왔다는 게 느껴져서 반가움을 숨겨야 했다이삼 일이 지나면 술 냄새를 풍기는 형부가 왔고 언니는 가기 싫은 소가 고삐에 끌려가듯 따라나섰다.  


형부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언니의 삶은 더욱더 고단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손톱이 자라날 틈 없이 흙과 싸웠다. 남의 집 품삯을 받으며 4남매를 중고등학교에 보내서 결혼까지 시켰다. 그러나 조카들은 우애하지 않고 언니가 보는 앞에서 조그만 일에도 자기 팔이 굵다고 옥신각신했다. 심지어 어머니의 고생을 몰라주고 사업 밑천을 대주지 않는다고 절교를 선언한 철부지 조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이웃이 알까 두려워 속에 옹이를 박는 일이 다반사였다.


언니 집에 들어섰다. 형제들이 둘러앉은 자리에 얼굴이 발그레하게 취기가 오른 언니가 노래를 부른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가사와 곡을 독백처럼 내뱉는다. 새겨들으니 살아온 인생을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세월에 낡은 구부정한 몸으로 엉덩이를 실룩이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것보다 애잔하다분위기가 한창 어우러질 무렵언니의 큰아들인 조카 내외가 왔다그때다“아이 재수 없어가자.”라며 둘째 사위가 자기 처를 부르더니 일어섰다즐거운 날은 참아야 한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쫓아가서 달래보지만막무가내로 자리를 떴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듯 가라앉았다언니는 무안한 마음을 의연한 척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살리려 애를 쓰지만그 너머엔 한숨이 보인다.


남편 복 없는 사람은 자식 복도 없다고 했던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 자식들은 그대로 배운다. 내가 자식을 함부로 대하면 남도 그렇게 대하는 법이다.


김용숙 집사

산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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