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문화/신앙에세이

어떤 인연

산과 들은 봄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여기저기 꽃 축제가 한창인 요즘,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녀는 우리가게에 손님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도시로 이사 가서 가끔 만나는 친구다. 친구가 되기까지 그 간의 풍경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첫 만남 때 부드럽지 못한 표정과 안 좋은 모습으로 언성을 높인 일이 나를 민망하게 한다. 

 

주방용품을 파는 그릇가게일이 서툴러 손님응대에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김장철이라 가게는 손님들로 붐볐다. 그날도 김장용 소쿠리와 고무통을 사러 온 손님이 에누리를 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적정 가격을 제시했지만 더 낮은 가격을 요구했다. 물건을 팔 수 없었다. 공손하게 다른 가게에서 그 금액에 맞는 걸 찾아보길 권했다. 그래도 가격을 낮춰 줄 것을 요구하며 버티었다. 거듭 안된다는 나의 말에 장사꾼이 에누리도 안 해주고 화를 내냐고 따지는 거였다. 이어서 하는 말이 장사꾼이 물건을 팔아야지 하는 말을 계속 쏟아 내었다.

 

나는 말문을 닫았다. 귀에 산울림이 되어 메아리치는 장사꾼이라는 말에 울컥 목구멍에서 눈시울까지 치밀어 오르는 슬픔이 노을처럼 붉게 번졌다.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자칫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받곤 한다. 말로써 상처를 받으니 그 자국이 깊고 넓게 퍼져갔다. 마음에 아픔이 컸 다.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한테 사정하는 장사꾼의 모습을 바꿔보고 싶었다. 나는 적의를 품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물건 원가 장부를 그녀의 눈앞에 들이 밀었다. “어떻게 원가보다 더 싸게 물건을 사려고 하세요? 손님이면 손님답게 처신해야지. 앞으로 우리가게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렇게 인연이 끝난 줄 알았다. 내가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서너 달 후 딸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서였다. 서로를 알아봤지만 피차 개의치 않았다. 일학년이 열한 개 반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딸아이와 그녀 아들이 같은 반에 편성되었다. 나는 엄마들의 추천으로 학부모회장에 이름이 올랐다. 가게일 때문에 거듭 사양했지만 담임선생님의 시선을 받고 결국 수락하였다. 다음날 그녀가 가게로 찾아왔다. 그때의 일은 자기가 너무 경솔했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둘 사이에 있었던 사연을 다른 학부모들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는 거였다. 나는 한번 상처를 받으면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고민이 깊어졌다. 마음에 상처를 준 누군가와 마음을 맞춰 가기에는 모가 난 성격인지도 모른다. 그게 또 다른 슬픔으로 다가와 생각의 불을 지폈다.

 

2부제 수업을 할 때라 교실청소 등으로 자주 만나야했다. 가게일과 맞물려 시간이 어려울 때는 그녀가 앞장서서 내 자리를 채워 주었다. 내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나 또한 그녀에게 상처를 줬는데 자존심을 날카롭게 세우는 나의 무지함을 반성했다.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의 실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생활에 병약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사과를 선선이 받아들이지 못한 속 좁은 자신에 대한 탄식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배려하지 못한 닫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유통업을 하는 큰댁에 알아보니 마침 일자리가 있었다. 매장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어서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녀의 의사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색을 하며 당장 출근해도 된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했다. 일터에서 성실함으로 신임을 얻어 차츰 생활이 안정되었고 오랜 기간 큰댁에 몸담았다.

 

지금은 그 친구 남편의 직장 때문에 타도시에 살고 있지만, 계절이 바뀌는 분기별로 만나고 있다. 봄꽃이 만발하는 이 계절에 그녀와 잠시 짬을 내어 일상을 씻어보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김금만 집사
남목교회

'기독문화 > 신앙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자크와 함께  (0) 2020.07.02
양탕국  (0) 2020.03.27
사이  (0) 2019.06.11
  (0) 2019.05.17
한(限)  (0) 201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