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어김없이 마중을 나왔다. 도착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상경한 지 반백년이지만 자갈치 아지매 억양은 그대로요, 자식 보러 나온 어머니처럼 양손에는 불룩한 가방을 들었다. 그녀의 가방 속, 뻔했다. 보나마나 모임에서 만날 회원들의 먹거리와 또 분명 나에게 줄 무엇이 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우리가 머물 인사동 골목에는 마트나 편의점 찾기가 힘들어 간식거리를 좀 챙겨왔다고 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어떻게 짐 꾸러미를 들고 다니는지 나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늘 짐을 만들어 다니는 그녀.
오후 햇살이 골목을 한창 누비는 시간, 예약된 홀에서 「아하브」 문학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 이름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간의 깊은 안부를 서로서로 나누는 사이에 그녀가 가방을 열어젖혔다. 다과가 쏟아졌다. 과도와 쟁반, 이쑤시개까지 준비해왔다.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들은 출출한 배를 채우고 노독까지 시원하게 풀었다. 둘러보면 편의점이 왜 없으랴. 그녀가 들고 온 먹거리도 마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맛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녀 역시 짐을 들고 먼 길을 오는 동안 감로수를 나르는 듯 좋았을 것이다. 다과접시가 빌 무렵 우리가 가진 사랑과 감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1차 회의가 끝나고 각자의 시간을 좀 가진 후 저녁에 다시 2차 모임을 약속했다.
모두 흩어지자 그녀가 가방을 열더니 나에게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분홍표지로 된 새 노트였다.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두텁고 꽤 무거웠다. 자기 것을 사면서 하나 더 샀다고 했지만 나는 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그녀로부터 감동을 받아왔다. 언제나 멀리서 왔다는 핑계로 나의 빈 손은 또다시 부끄러워지곤 했다. 그녀의 마음을 받아 든 내 가방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묵직해졌다.
그녀가 옷가게로 가자고 했다. 오늘 우리 만남을 위해 그녀가 일전에 블라우스를 사서 보내주었는데 몸에 맞지 않았다. 도로 보내었더니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보라는 것이었다. 이미 값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사주고 싶은 마음을 도로 집어넣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가 분명 또 짐을 만들어 올 것을 알기에 서울 가면 직접 고르겠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걸어서 도착한 곳은 그녀가 사는 인천의 어느 옷가게였다. 그녀가 사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내가 입고 온 옷은 가방 속에 우겨 넣었다. 어깨에 멘 가방이 굴러 내릴까봐 만삭된 배를 안은 듯한 내 모습을 보며 그녀가 좋아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밤거리를 쏘다니고 오래도록 차도 마셨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는 불룩한 가방이 신경 쓰였지만 수십 년 그녀와 알고 지내오면서 그녀의 한결같은 마음을 알기에 힘들거나 귀찮지 않았다. 누가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상대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만큼 눈에 잘 보이는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손수 짐을 들고 다니기를 꺼려한다. 웬만하면 택배로 부치거나 현지에서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해결한다. 그녀가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인터넷 정보에 밝은 걸 보면 무겁게 짐을 들고 다니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짐 꾸러미를 만들어 나온다. 그녀뿐만 아니다. 가까운 마트에 나가면 단돈 얼마에 살 수 있는 것도 꼭 보따리에 챙겨 오시는 내 어머니, 멀리 있는 딸집을 가면서 인스턴트 컵라면까지 가방 빈 구석구석 채워가는 지인, 집에서 꼼꼼히 검사를 해주려고 학생들의 과제물을 늘 무겁게 달고 다니는 친구를 보면 짐은 어떤 대상을 향한 떨칠 수 없는 애정의 산물 같은 것이 아닐까싶다.
길을 가면서 맨송맨송 빈 손으로 다니는 사람은 왠지 삭막해 보인다. 그들의 안주머니 속에 든 갖가지 카드와 두둑한 현금으로 마음을 잘 나타낼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 키 하나만 누르면 굉장한 정보의 선물을 손쉽게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런 것들이 물질적이고 기계적이며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마음처럼 느껴진다. 반면 낡은 가방 속에서 나온 소소한 물건이라도 직접 전해지는 모습을 보면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예전에 흔했던 이런 모습이 이제는 점점 진풍경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우리 생이 다하면 무겁고 슬펐던 삶의 짐은 모두 내려놓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의 불에 타지 않는 붉은 심장과 왕자의 심부름을 한 제비의 시체만을 천사가 거두어간다. 사는 동안 애틋한 마음을 실은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것도 세상을 잘 살다가는 하나의 길이 아닐까.
언제나 무거운 짐을 만들어 와서는 이에게 저에게 흩어놓고 가볍게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설성제 집사
태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