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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나답게 사는 법

  2년째 우쿨렐레 수업을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회원 한 사람과 친해졌다.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다가 그분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그거 알아요? 내가 지금까지 똑같은 색깔의 티셔츠만 입고 온 거.” 생각지 못한 말에 전혀 몰랐다고 답을 했다.


  “괜찮아요. 다들 몰라요. 제가 2년간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였죠.”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남의 시선을 의식해 옷차림에 신경 써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 한 달은커녕 일주일 전에 만난 사람들의 옷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그러하듯 남들도 나의 옷차림에 관심이 없을 터였다.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장에서 몇 번 입지 않은 불편한 정장 같은 옷들을 싹 걷어냈다. 책, 소품 등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산 물건도 정리했다.


  이를 계기로 내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허무하게도 그동안의 내 인생은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삶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별 내용 없는 게시물을 올리며 SNS의 댓글 반응에 집착했던 일이 많았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궁금해하느라 쉴 틈 없이 봤던 영상들,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만 떠들었다.


  머릿속은 온통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생각으로 차 있었다. 내가 속해 있는 상가모임에서 일할 때면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 늘 힘에 부치게 여러 가지 일을 맡았다. 열린 장터 같은 행사 후에는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일찍 가지만, 나는 끝까지 남아 마무리를 했다. 남의 평판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안 좋은 말을 견디지 못하는 타고난 나의 성격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좋은 평판만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상처 주길 반복하는 내가 참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서 타인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나답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이제 나는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유행에 따른 옷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산다. 높은 하이힐은 벗었다. 남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나 상식을 기르는 책을 억지로 읽기보다는, 내가 그때그때 읽고 싶고 필요한 책 위주로 읽는다. SNS를 할 때는 내게도 타인에게도 도움 되는 글을 올리려 하고, 안 좋은 기억은 금세 떨쳐내려 한다.


  어릴 적부터 공부하고, 취직하고, 돈 벌며 맞춘 듯 짜인 사회의 틀 속에서 남들을 따라가느라 내 행복이 뭔지 찾을 여유가 없었다. 내가 계획했던 배움의 생각 등 살면서 마주친 모든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것이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이제 온전한 내 삶의 주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실행하기가 어렵다. 늘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 꼬리를 물고 뒤따라 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항상 바쁘게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또 누군가에게 ‘열심히 산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스스로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 바쁨 안에 온전한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매번 짜여진 일정대로 하루와 한 달, 한 해를 보냈다. 틈틈이 들어야 할 강의를 듣고, 악기를 배우고. 독립한 딸의 반찬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몸에 탈이 났다.


  무릎관절이 아팠다. 하던 일들을 강제로 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입원 일주일이 지나자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구나, 잘 돌아가는구나.’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로 한 달을 입원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휴식시간이었다. 낮잠도 자고, 누워서 찬양도 마음껏 들었다. 휴게실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도 보았다.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는 구름이 마치 나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름을 보면서 지나갔던 사소한 것들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밖만 보고 내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또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진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너무 많이 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재능들을 천천히 가꾸고 발전시키자. 급하지 않게 내 속도에 맞춰서.


  수술 후, 무릎은 치료가 잘 되어 건강하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운동하는 두 시간은 꼭 지킨다. 예전에는 급한 일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필요한 일을 먼저 챙긴다. 타인에게 향했던 시선을 떨쳐내고 나답게 사는 법을 찾으려 학습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에서 나로 삶의 중심이 옮겨지면 그제야 나답게 산다는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두루두루 넓게, 또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모여 내 인생의 행복을 완성하지 않을까.


김금만 집사
남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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