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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여름의 냄새들

 

  7월, 붉은 꽃들의 계절이다. 접시꽃 능소화 수국 등등, 꽃만 보면 코를 킁킁대곤 한다. 꽃이 아무리 예쁘고 탐스러워도 향기 없는 꽃은 생명을 잉태치 못한 애송이들만 같다.


  냄새가 어디 꽃에서만 나나. 사람에게서도 사물에서도 자연 만물에 냄새가 있는데, 유독 내 눈을 멀게 했던 냄새들이 아직 코끝에 살아있다. 


  나는 한여름의 도랑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도랑에서 훅훅 끼쳐 오르던 냄새가 좋았다. 도랑물 속에는 소낙비 맞은 후에 피어오르는 흙냄새가 있고, 삘기 씹을 때의 연둣빛 풀냄새도 설풋, 무더운 여름 땅속의 잡초뿌리들 냄새도, 그리고 저녁 어스름에 묻어오는 서늘한 저녁 냄새도 난다. 이런 냄새들이 합쳐져서 풍기는 달고 비릿한 도랑물냄새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금도 도랑을 만나면 코부터 먼저 달려 나가 그 냄새를 찾는다. 한참 물가에 서서 어린 시절의 그 한여름을 떠올리다보면 찌는 여름도 아름답다.  


  모기향냄새는 또 어떻고? 내가 자란 시골동네 교회는 한쪽 구석퉁이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커다란 탁자 서너 개와 버려진 의자 몇 개를 놓았는데 늦게 가면 자리를 차지할 수 없을 만큼 학구열로 불타는 데였다. 거긴 언제나 한여름 모기향냄새로 가득했다. 그 연기가 책상 위에서, 또 구석진 자리들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우리들 옷에 배어들었다. 연필 소리, 책장 넘어가는 소리, 가끔 깊고 긴 한숨숨소리가 모기향 속으로 사라져 가면 어느덧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름이면 모기향을 준비한다. 매캐한 모기향 속에 그 시절 열심히 공부하던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들의 기억 속에도 같은 향기를 가지고 있으리라. 그들도 어느 곳에서 여름이면 모기향을 피우고 있지 않을까. 


  이런 별 것 아닌 냄새가 내 몸 어딘가에 저장돼 있다가 가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그리움을 불러오는 도화선이 된다. 지금도 지나고 있는 이 시간의 냄새는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 아니요, 저절로 스며드는 중이다. 훗날 그리운 냄새, 감사의 향기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물을 내시는 예수님의 향기로 승화될 것을 믿는다.          


설성제 집사
태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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