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썸네일형 리스트형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 음악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5세에 작곡을 시작했고 6세에 첫 연주 여행을 떠났고 8세에 처음 교향곡을 작곡했고, 12세에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35세에 사망할 때까지 622개의 곡을 남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아무리 복잡한 합창곡이라도 한번 들으면 통째로 외워 버렸다. 게다가 모든 작곡은 머릿속에서 단번에 완성하였다. 예컨대 모차르트는 열네 살 무렵 시스티나 성당에서 합창곡 “미제레레”를 들었는데 연주 시간이 10분이 넘고 모두 아홉 성부로 구성된 길고 복잡한 합창곡을 단 한번 듣고 고스란히 악보에 옮겨놓았다. 당시에는 왕실의 의뢰로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모차르트는 마감 직전에 머릿속에 든 악보 전체를 일필휘지로 적어 냈다. 모차르트를 지켜보며 열등감에 시달렸던 음악가가 있다. 그는.. 더보기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2025년도는 을사년이라고 하고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1세기의 4분의 1을 보내는 중요한 시기인데 국가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의 계획대로 움직여질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엑스트라에 불과하고 아무리 날뛰고 별별 짓을 다 해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역사의 창조주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보조를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더욱 겸손하고 슬기롭게 살아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 더보기 "그 때가 그립습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에도 가기 전에 사촌 형의 전도로 시골 초가집 온돌방교회에서 친구들과 몇 명이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아련한 기억 속에 성탄절이 다가오면 12월 첫날부터 우리는 매일 예배당에 모여 교회 선생님과 함께 성탄절 준비했다. 구들방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라고 해야 전도사님과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학생 선생님과 그의 남동생, 그의 몇몇 친구들이었다. 성탄절 프로그램을 짜는데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은 성탄절 인사말을 누가 하는가이다. 그때 유치부의 꼬마들은 글을 몰랐다. 아이의 어머니가 고민 고민하여 인사말을 적어서 오면 선생님이 읽어보고 좋아하셨다. 두 손을 예쁘게 모으고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서는 “오늘은 우리 예수님이 탄생하신 크.. 더보기 "외로움" 사람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므로 여자 하와를 만들어서 그에게 돕는 배필로 주시면서 서로 협력하여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간다. 은퇴하신 목사님이 치매에 걸리셨다는 말을 들었다. 외로움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1인 가구가 2022년 기준 총 739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4.1%를 차지한다. 이는 2005년 20%보다 14.1% 증가한 수치로,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되어 2052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1.3%를 차지해 약 962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주의 연.. 더보기 "돌아 갈 고향이 있는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향수를 먹고 산다. 순진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본다. 아련한 기억 속의 엄마 품속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6.25의 폐허가 잔존하던 시절에 우리 동네는 거제 제7포로수용소로 흡수되고, 3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부모님은 파괴된 논밭을 다시 일구시느라 밤낮이 없으셨다. 온 들판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그 잔재는 논 모퉁이마다 돌무더기가 되어 전쟁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때 돌무더기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몰랐다. 조금 더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눈만 뜨면 소를 먹이러 벌거벗겨진 산등성이를 올랐다. 그곳 땅은 조금만 파도 총알이 쏟아져 나왔다. 6.25 전쟁 때 이곳은 사격장이었다. 왜 탄피와 총알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파서 집으로 가.. 더보기 나의 꿈, 하나님의 꿈 군대 생활을 마치고 돌아 온 나는 “농촌 계몽 운동”을 꿈꿨다. 이런 마음은 고인이 된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읽은후에 주신 감동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소망이요 꿈이었다. “한번 살다가는 인생, 나는 어떻게 살다 가면 좋을 까?”를 질문하며 커다란 전지를 사다 놓고 “나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산에는 과실나무를 심고 들판에는 첨단 시설로 고소득 식물을 키우고, 한쪽 산기슭에는 우사나 돈사, 계사를 만들어 짐승을 키우고, 가장 중심에는 예배당을 세우고, 넓은 운동장이 있는 기숙사를 지어 오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모아 정신운동, 육체운동, 영성훈련을 시켜 세상으로 내 보내는 일을 구상했다. 이 일이야 말로 이 세상을 .. 더보기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혼자서는 누릴 수 없는 행복 예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오셨다. 오래 산 사람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니 참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욕심을 따라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말을 잘못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일들이 많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100세 이상을 살아가는 연세대 교수를 지낸 김형석 교수는 “100명이 100가지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의 목적은 하나다. 그 목적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나의 일과 말이 상대방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자기의 이익과 행복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 이유는 혼자서는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 더보기 만남과 희망 어린 시절 소를 먹이고 시냇가에서 물고기 잡고 친구들이랑 비석 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놀이를 하면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에 우리 엄마가 생선을 많이 사오는 날은 제삿날이라 소죽 솥가마 부엌에 앉아서 아버지와 모태(석쇠) 위에 생선을 노랑노랑 굽는 것이 신이 났고, 계란을 삶아주면 예쁘게 모양을 내어 제기에 담아 놓고, 대추며 사과랑 배를 주면 맨 윗부분은 도려내어 예쁘게 제기에 담아 저녁 제사 지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엄마는 많이 아프기도 해서 늘 푸닥거리를 하기를 자주 했습니다. 우리 집은 대나무로 둘러 쌓여있는 집인지라 동네 사람들이 저 집은 귀신이 많이 나오는 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싫었고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