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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돌아 갈 고향이 있는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향수를 먹고 산다. 순진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본다. 

(사진1_소키우기, 전북 고창, 1974년 김녕만)

  아련한 기억 속의 엄마 품속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6.25의 폐허가 잔존하던 시절에 우리 동네는 거제 제7포로수용소로 흡수되고, 3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부모님은 파괴된 논밭을 다시 일구시느라 밤낮이 없으셨다. 온 들판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그 잔재는 논 모퉁이마다 돌무더기가 되어 전쟁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때  돌무더기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몰랐다.

  조금 더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눈만 뜨면 소를 먹이러 벌거벗겨진 산등성이를 올랐다. 그곳 땅은 조금만 파도 총알이 쏟아져 나왔다. 6.25 전쟁 때 이곳은 사격장이었다. 왜 탄피와 총알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파서 집으로 가져와 두들기면 구리가 나오고, 또 철심이 나오는데 이것을 분리하여 두었다가 엿장수가 올 때마다 탄피를 들고 가 상당한 엿을 바꾸어 먹었다. 한창 배고프던 그 시절에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사진2_엿장수모습, 국립민속박물관)

  이제 중학생이 되어 가끔 가설극장이 들어온다. 영화가 보고 싶지만 학교에서는 완전히 금지한다. 선생님들은 조를 짜서 학생들을 지키셨다. 그래도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 궁리를 한다. 돈이 없으니 우리 집 울타리에 박혀 있는 쇠말뚝을 삼촌과 하나씩 뽑아 들고 고물상으로 가져간다. 딱 두 사람이 볼 수 있는 돈을 준다. 나보다 3살 많은 삼촌과의 기억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신영균과 김재옥 님의 “전쟁과 여교사”라는 6.25전쟁이야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최근에 김재옥 님은 실존 인물로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는 가끔 시장에서 약도 팔고 연극도 하는 ‘팔도연극단’이 오면 나를 데리고 가 가장 앞자리에서 연극을 보여주셨다. 그때 본 연극은 심청전, 흥부놀부전, 장화홍련전, 콩쥐팥쥐전 등 참 좋은 작품들로 당시 주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곤 했다. 그때 그 연극이 얼마나 생동감을 주는지 지금도 추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심청이가 물에 빠지는 장면,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 흥부집에서 실금실금 톱질을 하니 박 속에서 금이 쏟아지는 광경은 온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명장면들이었다. 

  하루는 집에 혼자 있는데 북소리와 함께 구루무를 팔러 사람들이 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또 그때 갈구리 손으로 동냥을 다니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어린마음에 기겁을 하고 저멀리 산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다 추억 속의 사연들이다. 이제는 산천이 변하여 그 자리에 갈 수도 없고 , 함께 웃을 친구들도 없다. 추억 속에 사연들이랑 묻어두고 이제는 새로운 나의 고향을 찾아가야 한다. 가끔 가본 나의 고향은 옛날의 추억이 서린 고향의 모습은 이제 없다.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추억의 장소들은 땅에 묻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사라진 고향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키던 고향은 개발의 붐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내 맘속 어린 시절의 고향은 찾을 길이 없다.

  그렇지만 진정한 나의 고향이 아직 남아 있음을 찾은 나는 희망이 넘친다. 그곳은 바로 나의 영원한 집, 하늘나라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버지가 그립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분들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계신 나의 고향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 기쁨으로 달려가리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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