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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혼자서는 누릴 수 없는 행복
예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오셨다.

  오래 산 사람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니 참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욕심을 따라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말을 잘못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일들이 많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100세 이상을 살아가는 연세대 교수를 지낸 김형석 교수는 “100명이 100가지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의 목적은 하나다. 그 목적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나의 일과 말이 상대방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자기의 이익과 행복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 이유는 혼자서는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오셨다. 그것이 곧 자신을 죽이고 우리를 살리는 위대한 일이었다. 개가 자기 꼬리를 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요즘은 사람을 죽이고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자기를 고발한 사람을 향해 내가 출소하면 반드시 보복을 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듣는 당사자는 무서워서 이 세상을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법원에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단상에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올라서서 하는 말에 독기가 가득한 말을 쏟아낸다. 내가 권력을 쥐면 너희들 다 죽었다는 식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 그런가? 이 세상이 어찌 되려고 날이 갈수록 온화함과 겸손함과 반성의 마음은 사라지고 보복의 심장만 불같이 타오르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가?

  일전에 국가가 의사를 증원하여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의사협회에서는 목숨을 걸고 이 일을 막겠다고 길거리로 나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마이크를 쥔 의사가 하는 말을 들으면 과연 저 들이 수술 칼을 손에 쥐고 있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칼이라도 강도가 들면 무서운 흉기가 되고, 의사가 들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는데 말이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에는 이유가 없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전에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이사를 간 사람이 있는데 그는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지도자였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한번 만나자고 한다.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알고 싶다고 했더니 그간 너무 잘못한 일이 있어 사과를 드리고, 자기를 누르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한다. 그날을 기다렸다 만나고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쾌유하지 않았다. 용서는 이유가 없어야 하는데 아직도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저 지금의 자기 처지가 처량해 위로받기 위한 만남이었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는 이유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 』렘브란트는 세상 사람들의 질타와 비난, 그리고 죽음의 위협에  놓인 한 여인을 빛 속에 둔다. (출처_김학철의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중에서)

  요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온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는 말은 이런 여자는 율법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이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돌로 치라“(요8:7)하니 아무도 돌을 들 수 없어 다 도망을 간다. 이때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하는 말씀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내일을 위해 부끄러우면 얼굴이 붉어지고 미안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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