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 폭우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물어져 갔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무한 책임을 덧지우려고 합니다.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모든 책임을 예수님처럼 짊어지고 가야할 교회라면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란 믿음의 공동체 안에 있는 우리 스스로를 의미합니다.
자유라는 것은 이런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광복(光復)이라고 합니다. 빛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심판이라는 어둠의 그림자는 늘 함께 합니다. 정오의 햇빛 아래에 서면 어김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이렇듯 숱한 그림자들이 밝은 대낮에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태초에 아담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역한 불순종의 댓가치고는 극한 절망으로 좇아오고 있습니다. 뭉크(노르웨이 미술가)의 절규처럼 그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포스트모던 이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짙은 검회색으로 도배된 세상에서 모든 것이 혼돈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상실한 사회에 칠흙같은 어둠속으로 세상은 숨어들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채색된 한꺼풀을 벗겨내면 그렇습니다. 여름 해변에 돌덩이 하나를 들쳐내면 수많은 또아리 벌레들이 혼비백산하듯 하는 것입니다.
광복은 그렇게 온 세상에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빛이 비추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들어차야 합니다. 몽골의 땅굴에도, 라스베가스의 지하 하수도에도, 전쟁의 참호 속에서도, 테러의 골목에서도, 보석을 캐내어야 하는 지하 땅굴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하는 핑크빛 쇼윈도에도, 공원 숲이 가리워진 노숙자들에게도, 달동네 쪽방에도…….
나는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당신과 나의 어두운 마음 구석구석에도 그렇습니다. 온 세상 가득한 빛이 들어오면 됩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라고 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2천년 전 헬라 철학이 간절히 구했던 것, 로마세계가 찾아내려고 했던 것, 동양의 종교가 그렇게도 추구했던 것, 그것은 바로 빛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미래 세대에도 여전히 그럴것입니다. 구도자(Seeker)들의 갈망입니다. 수많은 구루(스승)들이 그렇습니다. 수없이 밝아졌다 사라져 버리는 유성처럼 열광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세상속에, 빛으로 들어차오신 예수, 그 분은 말씀, 로고스 였습니다. 모든 철학과 사상과 이념과 종교의 본질이 되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광복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는 빛이십니다. 지금도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국 광복 제78주년 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그토록 갈구했던 선조들의 피뿌린 토양위에 세워진 조국입니다. 이 땅과 백성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었으면 합니다.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심판에서부터 자유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광복이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당신의 광복이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쏟아질수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보다는 내 안에 있는 광복의 빛을 들고 어두운 골목길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당신이면 충분합니다. 그 빛이 당신에게 가득차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영식 목사(소리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