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민들레가 좋아서 뿌리째로 옮겨 심기도 하고 홀씨를 받아와서 바람에 날려 보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잘되질 않는다. 틈만나면 뿌리째 뽑아버리는 노란 민들레. 그것도 외래종이라고 보면 어느 풀섶에서도 잘도 자라고 꽃대도 튼실하게 피어 올린다. 식물들의 전쟁은 우성학적인 것에 의해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대청댐에서 잠수부들이 외래종인 베스를 작살로 잡아내는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토종 민물고기의 씨를 말린다고 한다. 깊은 산골 저수지만 해도 해가 지면 황소개구리의 울음 소리가 울려퍼진다. 어찌어찌해서 수입해서 들여온 것들인데 생태교란종이되고 생태계를 파괴시킨다고 했다. 전쟁은 물밑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서는 눈에 띄도록 더한 세상이 된다. 먹고 먹히는 본능이 도사리는 곳에 평화란 것은 없다. 평화라는 것은 강한 자(것)의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러한 현장에서 약자들의 생존 본능은 처절해지는 것이다.
가인의 형제 살인 이후로 인류 역사라는 것을 어느 한편으로 봐도 전쟁은 역사다. 부족, 종족, 집단, 사회, 민족, 국가 등등의 구조적인 본능을 지켜가기 위해서고 끊임없이 싸움과 투쟁을 체험한다. 공산주의 내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물론이겠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력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까지도 계급투쟁이 한창이다. 무슨 쟁의다, 투쟁이다 하면서 명분을 내걸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결국 강한자만 남는 것 같지만 강한자 중에도 강한자가 있고 약한자가 있다. 이들은 인권을 내세우고 부르짖어도 이러한 현상의 악순환은 그칠줄 모른다. 평화주의자의 평화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원죄로 인하여 파괴된 하나님의 질서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파괴적인 본능을 거스를 수는 없다. 무엇이 파괴자인가? 그렇게 해서까지 얻어내려고 하는 이기적 집단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들여다본다면 그 정체를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지역의 목회자들이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주장하는 성명서 내용 중에 남북평화협정체결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쪽에서는 핵 개발을 비롯하여 매일같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한쪽에서는 무장해제를 해야하는 것이 평화협정인지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
평화라는 것 또한 힘의 균형에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데 손에 잡은 연필깎기 칼까지 내려놓으라고 윽박지른다면 그 평화는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그토록 강한자 편에 서서 평화를 원한다면 자기 몸뚱아리의 기울기를 달리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상기하자! 6.25! 지금은 잊혀진 구호이지만 한참이나 오랜 세월동안 부르짖어 온 구호다. 어린아이들은 글짓기를 하고 표어를 만들어서 오려 붙이기도 하고 포스터를 그려 대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빨갱이는 눈이 도깨비처럼 빨간줄 알고 포스터를 그릴 때면 빨간 눈이어야 했다.
어떻든 전쟁은 끝나야한다.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역사는 전쟁사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전쟁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는 생존 본능이 꿈틀거린다. 종족, 국가라는 가치철학과 사상, 교육이념,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권을 빙자하고 평화를 빙자한 투쟁 내지는 전쟁. 그렇다면 이참에 전혀 다른 너와 내가 마주앉아 손을 잡아보는 것에서부터 평화를 따져봄이 어떠할지?
진영식 목사(소리침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