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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4월은 역시나 잔인한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새벽시간을 정하는데 가장 큰 일은 출근시간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것이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15분 간격으로 맞추는 것이었다. 울산의 산업이나 노동현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니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6시가 되면 출근 차량이 붐비고 오토바이 행렬은 줄을 잇는다. 태화강을 따라 자전거 행렬도 볼만한 아침 풍경이 된다.

  한참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퇴근 시간이 정시인데 정시가 되기전부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정문 가득 퇴근을 서두르는 오토바이 대열이 전투적으로 부르렁 거리고 있다. 정시 퇴근이면 사무실이나 작업 현장에서 마무리할 시간일텐데, 정시에 정문이 열리기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엇일까?

  교회 사무실에도 정해진 출근시간은 칼출근이어야 하는데 퇴근시간은 없다. 성도들의 출근길을 생각하면 게으름을 피울 수 없기에 처음부터 정해놓은 시간이다. 그렇다면 칼퇴근이어야 하는데 교회 사역, 교회 일이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지 않은가. 머리에 띠를 띠고 투쟁(?)을 해야할 때가 곧 다가올 것만 같은 생각이다.

  법적 노동시간이 어떻다해서 거리에 현수막을 내 건 것을 보았다. 그런데 누구는 어떻고 대통령은 칼퇴근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과연 칼퇴근을 할 수 있을까? 24시간 365일 5년 분초의 다툼도 없어야 하는 자리일텐데, 소시민인 내 편에서 보면 은근히 설득당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휴가기간 따져야하고 하루의 노동시간을 계산해야만 했는지 산업사회를 지나가면서 한참이나 헷갈리는 시대를 거쳐온 것은 분명하다. 청년 실업률은 늘어만 가고 실업률을 줄인다는 것이 노인 인력 창출이라는 계산이 빠른 사람들의 숫자놀음이 되었다. 힘든일은 어찌해서든 피해야만 하고 돈 될만한 것들에 눈독이 들어 4차산업, 블록체인... 등등을 포장한 온갖 이상하고 요상한 것들이 더욱 그럴싸하다.

  이래저래 4월은 역시나 잔인한 달인가보다. 심지어는 죽음의 달이라고까지 한다. 지금도 4월은 분명히 잔인하다. 죽음을 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희망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의 절규가 크다는 말이다. 차라리 오징어 게임이라도 시작했으면 좋겠다. ‘카지노’의 최민식 배우처럼 큰 소리 한번 쳐보고 싶기도 하겠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빼앗긴 사람들의 절망이 잔인함과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진리가 있다. 절대 희망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4월은 더 이상 잔인함이 없고 죽음을 생각할 이유도 없어진다.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을 소망하는 사람은 고난마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은 오히려 하늘 왕국을 소망하게 한다.

  어떠한 4월을 맞이하고 있는가? 당신에게서 잔인함과 죽음은 무엇인가? 그런 것을 이참에 한번 만이라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자! 그 곳은 죽음의 현장이 아니라 부활의 현장이 되도록 해보는 것이다. 2023년 4월은 내게는 역시 부활의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이 된다.

진영식 목사(소리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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