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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희망가


  혼자 마음 좋은 아버지는 이웃집 살림살이까지 걱정해 가면서 쌈짓돈을 풀어낸 것만 아니라, 곳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세간들까지 팔아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파종할 씨앗은 나랏님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마저 퍼다 내서 인심을 듬뿍 얻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만석군이라도 되듯이 깍듯했고, 어디를 가나 환영이 대단했습니다. 난전(시장)이라도 한 바퀴 돌라치면 온갖 장돌뱅이들이 몰려들었고, 우시장 옆에 자리 잡은 가마솥 국밥집에서 잘 우려낸 소머리 국밥을 떠들썩하게 대접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곳간은 비었고, 세간마저 텅 빈 빈집에 삭풍이 불어치면 구멍난 문풍지 떠는소리로 처자식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허기에 지친 모습으로 어디에다 눈길 한 번 주지도 못하고 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인심 쓰던 아버지의 빈자리에는 난데없는 거미줄이 뒤엉켜있습니다. 집구석 꼴이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난방비가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날에 두꺼운 옷을 꺼내입고 벌벌 떨었습니다만 누가 난방비를 훔쳐 간 듯합니다. 전기요금은 또 어떻습니까? 제대로 불 한번 밝히지 못했는데 폭탄을 맞았습니다. 영끌을 모아 겨우 집 한 채 장만한듯한데, 대출이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습니다.


  몸뚱아리 아끼지 않고 벌어들이는 데도 주머니에 쥐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국밥 한 그릇에 열광하고, 몇 푼 던져주는 지원금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은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사 이러쿵저러쿵 덤벼들다 보니, 백성들의 원성은 잦아들지 않고, 나랏님을 탓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아버지를 둔 탓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 했듯이 겨울 처마 끝에 곶감 빼어 먹듯이 단맛에 몰래 빼먹은 것은 바로 나였기 때문입니다.


  아뿔싸!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하면서도 여전한 습관에 길들여진 백성들은 씨 종자까지 내달라고 보챌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 더위와 태풍을 몇 차례 견디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겨우 가을 수확이 됩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줄 백성들이 적어서 탓입니다. 가을이 온다고 해도 이미 꿔다 먹은 장려미 갚으려면 얼마나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지. 그것이 궁금해지는 계절입니다.


  그런데도 북치고 장구 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고향 집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희 희망이 무엇이냐” 희망가를 목놓아 불러야겠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어야겠습니다. 아버지의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물려받은 또 다른 아버지들의 희망가를 듣고 싶습니다.

진영식 목사
소리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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