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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새우깡

 “손이 가요 손이 가……. 농심 새우깡” 어쩌면 국민가요보다도 더 친숙했던 광고 음악이었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은 걸 보면, 한때는 대단한 영향력을 미쳤고, 기업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전혀 모르는 세대들이 시대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되고 보니, ‘꼰대’와 ‘MZ’가 얼마나 심각하게 대립할 수 있는가 하는 염려도 된다. 그 생각과 가치의 차이를 어떻게 접근해낼 수 있겠는가? 이것이 시대 상황의 과제일 수 있다. 


  ‘윤형주 행복 콘서트’(울산의 빛 주관)가 성황리에 마무리된 것을 보면서 예배당을 꽉 채웠던 청중들 대부분이 ‘새우깡’을 즐겨 불렀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사진을 통해 분명하게 보게 된다. 세대가 함께 공유하고 통합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가는데 머리를 맞대고 자원을 제공해내지 않으면, 세대 간 단절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하물며 교회에서의 공감이 있는 장치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찬란한(?) 예배당이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게 한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인데, 전수할 아버지도 없고, 전수받을 아들도 없다. 어머니도 딸도 그렇다. 무엇이 되어 전설로 전해질 수 있을지 이미 전설은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치나 노동의 현장은 또 어떤가? 그동안 오징어 땅콩에 익숙한 꼰대들이 새우깡에 손이 가듯이 디자인이 좋은 비닐봉지만 남을 게 뻔하다. 마시멜로에 입맛들인 세대들은 또 어떠한가? 다방에 앉아서 꽁피(꽁초를 곁들여 삶아낸 커피)를 마시면서 다방레지 김양과 낭만을 좇던 그 시절, 과거를 얼마나 어떻게 기억해낼 수 있는지가 문제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비닐 컵을 습관처럼 들고 다니며 거리를 가로지르고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카페에 눌어붙어서 유리창 너머로 멍때리기를 즐기는 아이들은 또 어떤 과거가 되고 미래를 만들어 낼지 걱정이다. 


  정치판은 칼자루를 쥔 자들의 망나니짓이라고 우기기도 하지만, 자기가 잡은 곳이 칼자루인지 날 선 칼끝인지 도무지 구별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선혈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은 우두커니 구경만 하던 백성들뿐이고, 이래저래 피투성이로 남을 세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정의와 공정이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중심적이 되어야 하는지 이미 그 객관적 기준을 잃어버렸다. 본질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얼버무려 놓았기 때문이다. 비빔밥 속에서 당근과 시금치를 찾아내듯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선이 되고,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악이 되어 골라내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너도, 더러는 우리라는 집단 또한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딸은 어머니로부터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다. 새우깡에 자꾸 손이 간다. 마시멜로는 가까이 있는 한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오징어 땅콩은 또 어떤가? 에라,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너는 무엇인가?


  새우깡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그만 지나쳤나 보다. 새우깡 봉지를 뜯어내던 꼰대들이 이루어놓은 나라 살림을 들여다본다. 

진영식 목사(소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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