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 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윤극영 선생께서 21살이던 해 1924년에 지으신 ‘반달’은 최초의 동요일 뿐 아니라,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때로는 놀이로, 때로는 연가로 불렸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 돛대도, 삿대도 없지만, 서쪽 나라로 희망을 찾아 떠난 순례자들의 노래이기도 하다.
서쪽 하늘 저 끝에 극락정토가 있다고 한다. 유토피아, 샹그릴라, 어쩌면 미리내 은하수는 요단강 건너편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그려지는 하늘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의 어른들은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해 왔고, 그 희망의 나라에 도달한 듯하다.
겨울 삭풍이 몰아치는 밤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둥근 달 속에 비친 토끼 한 마리는 언제나 쉼 없이 떡방아를 찧고 있다. 춥고 배고픈 시절에 그만큼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풍요로운 약속을 받은 자들의 바램으로 전설에서 나온 동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하얀 쪽배를 타고 어둔 밤하늘을 정처 없이 헤매는 것 같지만,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바다 지나서 서쪽 나라로 간다. 그야말로 평화와 희망이다. 토끼 한 마리가 절구질하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풍요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하염없는 세월 같지만, 거기에는 번영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열렸다. 지치고 힘겹게 살아가는 세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희망, 번영을 포기하지 않는 토끼의 근성처럼 어쩌면 가장 연약한 동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기 자화상을 긍정의 힘으로 풀어내는 한 해였으면 한다.
가마솥을 얼마나 긁어대었는지, 놋숟가락은 반달이 되고, 어느 세월인지 그믐을 향해가는 초승달이 된다. 춥고 배고프고 허기진 시절을 지나오신 그리 멀지도 않는 옛일을 전설처럼 들려져야 하는 우리네 살림살이가 안타깝다.
아버지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지게질에 짓눌려 있어도, 어머니들이 가마솥을 그렇게도 긁어대었던 설움들도, 잊어버리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그 마음들이야 어떠한가? 이 모든 것들은 동화 속에서나 전설에서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금수저, 흙수저를 탓하고 따져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저마다 목소리만 커지게 된다면 코미디에 나오는 한마디처럼 “소는 누가 키우노?” 오늘 밤에는 삭풍이 몰아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함께 반달이라는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평화와 희망, 그리고 번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토끼 한 마리가 쉬지 않고 서쪽 나라로 향하면서 떡 방아 절구질하는 노래를 듣고 싶다. 어머님의 닳은 놋수저 그믐달이 아니라, 초하루 이틀을 지나 사흘에나 나타나는 초승달이고 싶다. 그것을 우러러보면서 나는 하수저이고 싶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수저가 되기를 소망한다.
진영식 목사(소리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