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정의롭고 이상적인 사람이 자기 역할에 충실히 할 때
정의롭고 이상적인 국가 가능해
플라톤(Plato)의『국가』를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여느 학교들과 달리 비교적 이른 오후에 하교했던 통에 통영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문당 서점>을 자주 서성거릴 수 있었습니다. 인물평전과 자기계발서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딱히 정답이 잘 보이지 않은 철학과 인문학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유토피아」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플라톤의『국가』를 만났고 없던 돈을 털어 탐독해 갈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이해력으로 오독하듯 읽어간 플라톤의 제안은 저를 두려운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당시에 느낀 바로는 공포국가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져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플라톤(BC 427-347)은 아테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성장하던 시기는 격변의 때였는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체제경쟁을 벌이며 펠레폰네소스전쟁이 한창인 때였습니다. 펠리클레스 시대에 아테네는 절정에 다다랐지만 전쟁과 패배로 몰락의 길에 빠져들었습니다. 플라톤이 20살이 되던 해에 소크라테스를 만났고 스승의 영향과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정치에 대한 야망을 내려놓고 그의 문하생으로 8년을 지내게 됩니다. BC 399년 법정에서의 여론에 따른 판결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판결과 죽음을 목도하고 큰 충격에 빠져 방황하게 됩니다. 충격을 지우기 위한 방법은 여행이었는데, 메가라, 이집트, 키레네 등을 여행하면서 많은 학자와 권위자들과 교제하면서 여느 사상을 종합하게 되는 계기로 삼습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플라톤은 80세가 될 때까지 수많은 저작들 남겼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쓴 일 없지만,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인품, 행적까지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품의 수는 수십 권에 이르지만 대표작으로는『소크라테스의 변명』,『향연』,『법률』이 있고 오늘 소개할 대표작『국가』가 포함됩니다. 전환의 시대에 발발했던 복잡다단한 정치적 변동으로 고통 받았던 그는 완전한 국가에 대한 소망을 품습니다. 플라톤이 열망했던 정의롭고 이상적인 국가가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로 번역이 되었겠지만, 찬성과 반대를 포함하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국가』는 총 10권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1권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입니다.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담고 있습니다. 정의란 결코 상대적이지 않으며 절대적 성격에 대해 논합니다. 2-4권은 그렇다면, 정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상적인 인간, 이상적인 국가란 지혜, 용기, 절제라는 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정돈합니다. 개인 신체기관으로 보자면 지혜는 머리, 용기는 가슴과 심장, 절제는 배와 팔다리에 해당되고, 국가로 보자면 지혜는 통치자에게 용기는 수호자들에게 절제는 생산계급에 행동되는 덕목으로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상태를 정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7권은 철인통치에 대한 내용과 국가를 다스릴 철인통치자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최고의 지성을 갖춘 철학자가 다스려야 하고,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으로 가장 고귀하고 탁월한 이들이 국가 통치에 복무해야 하며, 사리사욕과 타락을 차단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통치의 시기가 끝이 나면 은퇴하여 더 깊은 철학적 성찰을 이어가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봉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8-9권은 이상적인 국가가 타락하는 과정해서 생겨나는 잘못된 국가의 여러 유형과 인간유형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마지막 10권은 진리와 거리가 먼 모사와 모방을 부추기는 시인들을 나라에서 추방되어야 할 존재들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는 시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는 셈입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정의로운 사람이 죽고 난 후 받게 될 보상에 대한 이야기와 영혼불멸에 대한 담론이 담겼습니다. 윤회에 대한 주장은 인상적인데 그가 여행할 당시에 페르시아 지역에 유입된 인도의 불교 사상과 접촉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소피스트들 가운데도 이미 윤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개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동‧서의 사상적 교류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의 기원을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는데서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모여서 서로 돕고 살기 위해 같은 공간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국가는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호 부조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보았습니다. 정의롭고 이상적인 사람은 자기에게 맡는 일에 충실한 것이라고 보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는 국가가 정의롭고 이상적인 국가라고 보았습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맡은 것은 부조화이며 개인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국가공동체에도 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혼란하고 타락한 민주정치를 중우정치, 즉 다수에 의한 폭민정치(mobocracy)라고 불렀습니다.
플라톤의 인간관과 국가관은 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사상가들에게 찬성과 반대로 줄서게 만들었습니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 적으로 지목하여 비판했습니다. 우리시대의 눈으로 보자면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는 ‘전체주의 국가’처럼 비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체제가 완벽한 정치체제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체주의의 그늘만큼이나 민주주의에도 진한 그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나 토마스 모어와 캄파넬라, 마키아벨리와 토마스 홉스 그리고 루소까지 모두 그 시대의 국가의 그늘을 지워내기 위해 씨름했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성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담을 둘러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은 두려움과 공포 때문입니다. 유발과 야발은 산업과 예술을, 두발가인이 각양 동철로 무기를 만들어 생명과 재산을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참된 안식을 모르며, 공동체는 부조화 속에서 반목과 분열을 거듭합니다. 플라톤이 꿈꾸는 왕국은 꿈이며 이상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비교적 지혜로운 왕이 등극하더라도 그 연수는 짧으며 파국은 쉽게 들이닥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 만약 복음을 알고, 완전한 지혜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완전한 하나님나라 소식에 기뻐 버선발로 달려 나가 환영하지 않았을까요? 불완전한 땅을 살아가면서도 완전한 아버지의 통치 아래 하나님나라를 사는 성도들이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종인 목사(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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