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문화의 대립, 교회와 문화의 일치, 두 극단을 절충하는 입장 펼쳐
문화의 한복판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고민하고, 처신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출간된 책으로 현대고전으로 꼽히는 묵직한 책입니다. 현대는 냉전을 지나 세계화로 가속화되는 시대로 동‧서양의 문화가 급류를 타고 세차게 뒤섞이는 시대입니다. 현대는 알렉산더의 정복전쟁으로 인도사상이 서구로 유입되고, 십자군 전쟁으로 그리스 고전, 옛 문헌이 역 유입되면서 르네상스가 일어났던 것처럼 특정사건으로 문화가 섞이는 시대가 아닙니다. 2차 대전의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전후 팍스 아메리카나시대를 열었고, 인종의 용광로라 할 만큼 수많은 이민과 문화의 유입으로 전 세계적 문화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돈해야 할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 탄생한 걸작이『그리스도와 문화』입니다.
니버는 본서를 통해서 교회가 세상의 문화와 더불어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가는지 5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회와 문화의 대립을 소개하고, 두 번째로 이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든 교회와 문화의 일치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유형은 두 극단 사이에서 절충하는 입장으로 소개해 나갑니다.
첫째는 ‘문화와 대립하는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좇아야 할 유일한 권위자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여타의 문화적 권위는 단호하게 거부하는 비타협적 입장입니다. 교회는 문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문화를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니버는 교회사에서 이런 유형은 수도원운동이나 메노나이트와 퀘이커파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문화에 속한 교회’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좋은 문화들과 기독교의 특징을 동일시하는 입장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서 존재해 왔던 모든 좋은 문화들을 기독교의 어떤 부분과 닮았는지 살피면서 이런 좋은 문화는 교회와 아무런 간격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교회와 역사 가운데서는 중세시대의 아벨라르와 근대 이후의 로크, 라이프니츠와 칸트, 제퍼슨과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셋째는 ‘문화 위에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문화와 대립하지도 않고, 세상문화에 함몰되지도 않는다고 말하면서 교회와 문화 양자 모두를 긍정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한마디로 교회와 문화를 종합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순교자 저스틴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넷째는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이원론적 입장입니다. 인간의 모든 일과 모든 문화는 타락과 부패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타락과 부패에 속해 있고, 단 한 뼘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악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문화는 모두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절망적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유형으로 ‘문화를 변혁하는 교회’입니다. 변혁적 입장은 세상의 타락과 부패에 대해서 철저하게 인정하지만, 역설적 입장과 달리 문화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창조에 대해 소홀히 여기는 유형과 달리 창조와 구속이 균형을 잡아갑니다. 세상 속에 머무는 교회는 부패를 경험하지만, 원래 선하게 지어졌음을 강조하고, 변혁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니버는 자신이 어떤 입장에 속하였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 전반의 정황으로 볼 때 변혁유형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의 가장 큰 공헌은 세계화로 인해 문화충돌과 대립, 갈등과 혼합이 일어나던 때에 교회가 문화에 대해 대처해 온 5가지 유형으로 정돈한 일입니다. 교회와 문화에 대한 이러한 유형화 작업은 당대로써는 획기적인 일이었고, 이후에 일어난 교회와 문화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독교회에 끼친 기여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더 발전된 이해를 세워갈 수 있도록 토대역할을 하였습니다.
니버의 참신한 기획과 작업에도 불구하고 한계 또한 분명합니다. 5가지 유형구분을 통해서 발생한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버의 불완전한 유형화의 약점은 통합모형으로 보완한 D. A. 카슨의 『교회와 문화, 그 위태로운 관계』를 통해 보완되어야 했고, 신정통신학으로 기울어 있던 입장은 팀 켈러의『센터처치』에 의해서 개혁신학적인 입장으로 교정되어야 했습니다. 유형 속에 배치한 대표적인 인물들도 적합하지 않은 경우를 여럿 봅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문화 속에 세워지는 교회는 속한 지역의 문화를 떠날 수 없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이를 정돈했다는 점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분리시키지 않으셨고, 도리어 세상 안으로 보내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한 복판을 살아가며, 문화의 지대 너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문화의 한 복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시대의 문화를 읽어내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씨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니버의『그리스도와 문화』는 이에 대한 우리의 사명을 재고하도록 도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종인 목사(울산언약교회, 울산대학교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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