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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끄러운 일을 저질러 놓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의 잘못이 드러나면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부덕과 무지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살아왔던 때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 봄 소풍 때의 일이다. 거제도의 유명한 명승지 중 하나인 문동폭포로 갔다. 구경을 하고 넓은 잔디밭에 모여서 점심을 먹은 후 전교생들이 보물찾기를 했다. 쪽지에 적힌 내용대로 장기자랑이나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우리는 소풍 치고는 너무 일찍 집으로 오게 되었다. 친구들이 헤어짐을 섭섭해 했다. 나는 반장으로서 반 아이들을 다시 우리 집으로 불러 모았다. 남학생 7명에 여학생 7명이었던 것 같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는 가게에 들러 국화빵을 한 봉지 사들고 갔다. 마침 집에서 어머니가 라면을 끓여주시기에 모두 실컷 잘 먹고 재미있게 놀다가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교무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갔더니 선생님이 화가 단단히 나 계셨다. “남자 여자가, 말(馬)만한 것들이 한방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다그치셨다. 나는 그냥 이야기 하고 놀다 헤어졌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나부터 시작해 우리 집에 모여 놀았다는 학생들 모두를 골마루에 꿇어앉혔다. 그리곤 양손을 들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지시며 혀를 차셨다. “아직 피도 안 마른 자식들이 말이야, 응?”하시면서 꿀밤까지 한 대씩 먹이는 것이었다. 한참 뒤에 우리 모두는 골마루를 거닐면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저들은 부끄러운 일을 해서 벌을 받습니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되뇌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철없던 그 행동들을 돌아보면 참 민망하고 부끄럽다. 


  하루는 소를 먹이기 위해 산으로 갔다가 그만 친구들이랑 놀다가 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중에 보니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 콩을 잘라 먹고 있는 것이었다. 얼른 주인 모르게 끌고 나와서 소고삐를 잡고 채찍으로 소의 주둥이를 마구 때려주었다. “야! 이놈의 소야, 왜 남의 밭에 들어가 콩을 잘라 먹니?” 야단을 치면서 때려주는데 소가 알아들었는지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영혼 없는 소도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는 눈물을 흘리는데 사람이 자기 잘못을 저질러 놓고 뻔뻔하기가 한이 없다. 판사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해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자기가 떳떳하다고 항변하는 것을 볼 때 무척이나 민망하다. 도리어 그걸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다.
  얼마 전에 법무장관을 지낸 분이 자기 딸과 아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여러 장의 허위문서를 만들어 제출했다는 사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즉각 항소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이나 씁쓸하고 괴이했다.      


  마크 트웨인은 “사람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언제쯤 우리는 자기의 잘못을 지적당할 때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가 절로 숙여지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을는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항변을 하고 변명만 한다면 우리사회의 기준은 누가 잡아 갈 것인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살다보면 때로 억울한 일이 왜 없으랴. 하지만 승복하기도 하고 참기도 하며 먼저 자신을 되돌아봄이 마땅하고, 안으로나 밖으로나 잘못이 있을 땐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는 순수함을 잃지 않길 바라본다. 그리할 때 개인이나 사회 공동체, 또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발행인 옥재부(북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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