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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자유와 책임


  우리는 지난 만성절 전야제인 이태원의 핼러윈 참사나 경북 봉화 아연 광산 매몰 사고에 가슴을 쓸어내린 우리의 부모님이나 친척들에게는 고통의 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두 사건 다 인재(人災)라는 것은 같지만 핼러윈과 관련한 이태원 사고는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서 그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지도 못했지만, 사건이 발생하고도 재빨리 손을 쓸 수 없어서 피해가 더 커진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게다가 그 후에 처신하는 일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은 더해 갔지요. ‘내 아들딸들이 당한 일이라면 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마음은 더욱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경북 봉화의 아연 광산 사고 역시 인재(人災)라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매몰자들이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일사불란한 구조 활동으로 매몰자들을 구조한 사건이지요. 물론 구조 이면에는 매몰된 광부의 오랜 경험과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더 중요한 요인이었기에 거의 열흘 동안의 암흑 세상에서 생존할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핼러윈과 관련된 이태원 사고의 경우, 아이들이 사람 많은 곳에 가도록 내버려 둔 부모들, 그리고 그곳에 놀러 간 사람 개개인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다 아시겠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이와 비슷한 다른 경우라 해도 그에 참여한 사람 개개인은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기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은 그 주인 된 각자에게 가장 엄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태와 관련해서 “대통령 끌어내리기”를 획책하며, 추모 집회가 탄핵 집회로 변질되고 있는 저 무례함은 누구를 위한 일들인지 묻지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그의 취임사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 미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이 반드시 당시의 미국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요?


  생명과 재산을 보호 받아야 할 국민 개개인이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실한지 우리 각자가 스스로 엄중한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故 박완서 씨는 오래전 그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 배추 값이 폭락해도 정부 탓, 소 값이 내리고 사료 값이 오른 것도 정부 탓이고 대통령 탓이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대학을 못 가는 것은 과외공부도 못 시켜준 부모의 책임이고 잘못된 정부의 교육정책 때문이며, 결혼을 못 하는 것은 출생 시 남아를 선호하는 사회 통념으로 생긴 성비 불균형 때문이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고인이 하는 말이 맞는 말씀 아닌지요? 컴퓨터 같은 인공지능 기계의 발달로 사람 손이 필요한 일자리가 자꾸만 줄어들어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도 과학 발전을 주도한 정부 탓으로 보아야 할까요? 그러면 물어봅시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한국으로 오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수많은 공장이 그와 같은 동남아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고 서울 시청 앞 광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그와 같은 노동자들을 배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현실은 뭔가요? 한 마디로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안 하겠다는 3D를 회피하는 안일한 마인드 때문 아닐까요?


  오늘날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의식은 한 마디로 어리광 사회인 것 같습니다. 한 나라나 사회가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생기고 전통이 형성되면서 점점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순리에 맞는 발전일 터인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점점 어려져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보통이 아닙니다. 어리광이 너무 심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찌하다가 이 모양으로 변질 되어 가는지 세상이 갈수록 자유는 누리면서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온통 뒤집어씌우는 어리광 충만한 세상이 되어 가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국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발행인 옥재부 목사
북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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