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가 야무지게 들어서면서 살맛 나는 세상이 열리려나 했지만, ‘역시나’라고 한다. 세상 사는 이야기가 제법 있을 만도 한데 어디선가 불어대는 나팔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나가다가는 끝내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아 노심초사다. 이쪽 편에서 보면 저쪽이 그렇고 저쪽 편에서 보면 이쪽이 그렇다더라. 언제까지 이쪽, 저쪽 편 가르기에 줄을 서야 하는지 군대도 아닌 것이 줄서기 눈치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이 어떻다 한들 지금 어른들이 아이 적에 늘상해오던 놀이들인데 그것에 목숨이 달려있으니 문제다. 크게 가져봐야 별것 아닌 돈에 목숨줄을 걸어야 한다. 종일 땅따먹기를 하다가도 해거름이면 발로 쓱쓱 문질러 지워버리는 것들인데 왜 그리 목숨을 담보로 해서 호들갑을 떨어야 하고, 열광하려고 하는가?
몇 해 전에는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꽤나 인기 있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입장에서야 감동이 있던 그렇지않던 자기 평이겠지만, 실제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다. 짓이겨지고, 짓밟혀버리고, 지근지근 씹혀버린 자신의 삶에 분노조차 하지 못한다.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편하기 때문이다.
지난 폭우에 서울 강남 도심이 잠겼다고 해서 아우성이다. 물에 잠긴 수입차들만 대충 들여다보아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달동네 반지하에 물이 들어차서 겨우 콧구멍 하나 벌림 거리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되는 영상을 보았다. 골목길 쪽으로 난 쪽 창문은 유일하게 빛이 들어 올 수 있는 구멍이다. 그 구멍이 구원의 길이 된 것이다.
반지하로 두더치럼 땅굴을 파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준다 한들 땅굴이야 어디 한두 군데야 말이지 과연 답을 낼 수 있을까? 그래도 서울 하늘 아래에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이른 아침이면 땅굴을 벗어날 수 있는데 땅굴마저 숨어들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 가구 수가 500만 가구(?)나 된다고 한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아파트 한 평씩 기부할 수 있다면 반지하 땅굴 탈출이 가능할성싶은데, 어느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교회들마저도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랑이란 역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임에 틀림이 없다.
신혼살림을 서울이 지척인 곳 닭장집에서 시작했다. 부엌, 방, 다락, 이렇게 벽돌집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씌워진 여섯 가구, 맞은편에는 1호에서 6호까지 화장실이 나란히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닭장집이라고 한다. 한 푼 내세울 것이 없었던 교육전도사인 탓이었는지 불평 한마디 해내는 것조차 엄두에도 없었다.
서울 강남 1번지에서 교회를 섬기는데 드디어 인서울하게 된 곳이 강남 달동네 비탈 집이었다. 어느 해 물난리가 났는데, 햇빛이 스며드는 유일한 쪽 창문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아직까지 건재했던 재래식 화장실이 범람을 해서 새빛둥둥섬처럼 온 방 안으로 떠다녔던 때가 있었다. 그곳이 계곡 한가운데 집이었는 것은 그 후에야 보게 된 것이다.
대치동 어딘가 높은 층의 아파트에 심방을 했는데, 그해 겨울 유난히 추웠는데도 그 집 안주인은 소대나시(민소매) 원피스를 나풀거리고 있었다. 연탄을 뒤집어 때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위로한답시고 설레발로 다녔으니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반지하의 셋방살이에서라 할지라도 어디 하나 원망할 수 없었고, 불평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 그럴 생각도, 여유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목회자의 삶이라고 당연히 여겨왔기 때문이다. 내 생각보다도 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주장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내 집 한 평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도 푸념은 없다. 그것이 왜 수치가 되고, 극복해야 할 일이고, 벗어나야 할 땅굴이고, 지상 위에서 천국을 이뤄내겠다는 고집과 욕심을 부려야 할까? 어차피 3평도 안 되는 땅으로 꺼져 들어갈 수밖에 없을 텐데. 요즈음이야 작은 항아리 하나도 채워지지 않는 뼛골인데.
나는 기생충이었다. 닭장집 출신이다. 반지하 땅굴에서 아침마다 기어 나와야 햇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뭐 어쩌란 말이냐? 이참에 누구 하나 아파트 한 평씩만 기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교회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면, 막연한 바람으로 누군가 깃발을 세워줄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면 안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해주실 분이 있다면 하늘의 상급도 클 텐데, 세상은 살맛 날 텐데. 네게 그런 아파트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오늘은 공염불이라도 해야겠다.
진영식 목사
소리침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