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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오랜만에 산책을 나선다. 찬찬히 공원을 둘러보며 계절의 변화를 살핀다. 녹음은 짙어가고 군락진 꽃들은 저마다 화려함으로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얼굴을 스치는 풀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싱그럽다. 두 팔을 벌려 쏟아지는 햇살을 마시며 고개를 들어 눈부시게 화창한 하늘을 바라본다. 


  갑자기 미확인 물체가 눈앞에서 둥둥 떠다닌다. 좁쌀 크기의 동그란 물체는 옅은 회색과 검은색 경계의 색상으로 잠자리 날개만큼의 두께를 지녔다. 왼쪽 눈에서 나타난 이 물체는 1시에서 7시 방향으로 사선을 그리듯 서서히 이동한다. 간혹 서성이다 11시 방향으로 틀기도 한다. 숨바꼭질의 술래처럼 어딘가 숨어있다가 다시 나타나며 하나가 되었다가 여러 개가 보이기도 한다.


  안과에 갔다. 몇 가지 검사 후 의사는 비문증이라고 했다. 낯선 단어지만 왠지 슬퍼 보였다. 원인은 노화 현상과 관련되며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비문증(飛蚊症)을 검색했다. 날 비(飛)자와 모기 문(蚊)자를 써 ‘모기가 날아다니는 증상’이라는 뜻으로 일명 날파리증이라고 불린다. 안구 속을 채우고 있는 젤 성분의 유리체가 혼탁할 때 망막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현상이다. 떠다니는 물체의 모양이나 개수는 매우 다양하고 보는 방향을 따라다니며 보인다. 맑은 하늘이나 하얀 종이를 배경으로 봤을 때 더욱 뚜렷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내 증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어려서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고도 난시로 압축을 몇 번이나 한 안경을 쓰고 다녔다. 안경이 불편해 렌즈도 껴보다가 20대 후반에 라식 수술을 받고 눈이 뜨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시력이 나빠졌다. 불과 몇 미터 앞 지인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해 오해를 산 적도 많았다. 운전할 때 안경은 다시 필수품이 되었다. 다시 안경과 친하게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와 같은 반이 된 것도 모자라 짝꿍이 된 것처럼 영 내키지 않았다. 와중에 비문증까지 찾아오다니. 


  이십 년 지기 모임이 있다. 최근에 만나 안부를 주고받는데 한 친구가 비문증이 찾아와 불편해했다. 나에게만 찾아온 질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동지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비문증 환자는 나 말고 또 있었다. 네 명의 멤버 중 세 명이 같은 증상으로 불편해했다. 노안이라고 할 수 없는 현대인의 질환 같았다. 각자의 증상과 고충을 털어놓고 눈에 좋은 정보도 공유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렇게 우리는 계절의 변화처럼 앞으로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기로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눈이 있다. 모양에 따라 못마땅하여 눈알을 굴려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눈짓인 나비눈, 눈동자가 머루알처럼 까만 머루눈, 꼿꼿하게 치뜬 세모눈, 샛별같이 반짝거리는 맑고 초롱초롱한 샛별눈이 있다. 보는 능력에 따라 글을 보고 이해하는 능력인 글눈, 어떤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눈인 까막눈,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능력인 마음눈,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눈, 사물을 올바로 볼 줄 아는 참눈도 있다. 모임을 다녀온 후 지금 나에게는 마음눈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됐다. 


  눈은 흔히 마음의 창이라고 불린다. 타인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은 희망 온도를 지펴 영혼을 살리고, 멸시의 눈빛은 눈총이 되어 영혼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스탠드 조명 아래서 책을 읽으면 어느새 나타나는 물체로 집중할 수 없었다. 글자와 눈 사이에 끼어들어 생각을 휘젓는 불순물은 엄마 손에 안긴 동생의 등장을 처음 마주한 첫째 아이의 심정 같았다.


  갑자기 나와 평생을 함께 지내자고 하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이좋게 웃으며 살만큼 아량이 넓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찾아온 신체 증상 중의 하나인 이 물체에 그런 시선을 보낸다고 한들 고쳐질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함께 다니면서 토닥거리며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시각장애인을 의미하는 고인(瞽人)이라는 말은 눈이 멀거나 어두워 못 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쩌면 지금까지 깨끗한 눈으로 살았지만 어쩌다 찾아온 비문증으로 내 눈이 한 꺼풀 가리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치중해 불평만 하고 그 너머의 것은 보지 못한 내가 고인이 아니었을까. 또 타인의 슬픔과 아픔을 헤아려 이해와 공감을 해주며 보이는 것 너머 다른 것들을 보고 판단할 줄 알라고 나에게 전해온 메시지는 아닐까는 생각이 든다.


  책장을 넘긴다. 활자 위로 비행물체가 떠다닌다. 긍정의 스위치를 딸깍 켠다. 기발하고 참신한 생각도 둥둥 떠다닌다. 달아나지 않게 얼른 펜을 꺼낸다.


주은진 
우정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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