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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약쑥 한 자루

 

  텔레비전 볼륨을 높였다. 어머니께 보내는 밥 한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기에 보내는 효도밥상이라 그런지 가슴에 거미줄 같은 그리움이 번지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베란다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든다.  


  지금은 내 곁을 떠나신 어머니의 잔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너울춤을 추기 때문이리라.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구한 직장이 고향과는 너무 먼 지역이라 반대하셨다. 딸을 자주 볼 수 없어 안된다던 어머니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타지에서 만난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울산에 터를 잡았다. 어머니를 만나는 횟수는 일 년에 서너 번 뿐이었다.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느라 힘들 때였다.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위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약쑥 한 포대를 뜯어오셨다. 어머니와 통화할 때, 약쑥을 요구르트와 섞어 갈아 마시면 위가 튼튼해진다는 대화가 떠올랐다. 딸의 말을 듣고 쑥을 뜯기 위해 들판을 헤매고 다녔을 터다. 뒤늦게 후회를 하며 뒤통수를 쳤지만 쏟아져 버린 물이 되어버렸다.


  딸을 낳아 잘 키우면 비행기를 타는 호강을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그러한 딸이 못되었다. 시집보낸 딸이 늘 불안하셨던지 언제나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딸자식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련만 어머니는 차멀미 때문에 다녀가시지 못했다. 어머니는 쑥을 뜯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쑥을 뜯었으면 괜찮았으련만 농약이 묻지 않은 쑥을 찾아 야산을 헤매며 다녔다고 하셨다. 약으로 먹어야 하는 만큼 오염이 덜 된 깨끗한 쑥을 고르느라 산을 뒤지고 다녔을 정성이 아름아름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뜯은 쑥을 티끌하나 없이 다듬어 깨끗이 씻어 가지고 오신다며 전화 하셨을 때, 이일저일 바쁜 일이 많았던 나는 걱정이 앞섰다.    


  말로는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시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정작 오신다고 하자 바쁜 일상 탓에 반갑다 하면서도 어떻게 대접해 드려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성격이 깔끔한 어머니의 손님 대접이 어떤지 눈으로 봐왔기에 어느새 어머니가 내게 부담스런 손님이 되어 있었다. 이부자리부터 반찬준비까지 생각을 반복했다.


  일을 모두 미뤄놓고 어머니를 맞이하러 터미널에 나갔다. 버스가 멈추고 어머니는 큰 포대를 들고 내렸다. 한가득 들어있는 쑥의 양에 내 두 눈은 놀란 토끼마냥 동공이 팽창돼 버렸다. 내가 사는 이곳도 조금만 나가면 들판이 넓게 자리하고 있어 필요한 만큼 조금씩 뜯으면 될 일이었다.


  왜 힘들여 이렇게 많은 양을 가져오셨냐고 투덜거리자 어머니 안색이 금방 굳어졌다. 응석부릴 나이도 아닌데 어머니의 정성과 애틋한 사랑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후회할 기회도 없이 나는 나이를 헛먹고 살아온 철부지가 되었다.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신 어머니였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 나눠주는 재미로 사셨던 분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보였던 어머니께 내 오만함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나이 들수록 그리움도 많아지고 나누어주고 싶어지는 일상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 못하고 행동한 내 불찰이었다.


김금만 집사
울산남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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