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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무지개 마을

  

화사한 빛을 받아 감천 문화마을이 화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면 어느 화가가 무지개를 그리려다 엉뚱한 영감을 받아 알록달록 예쁘게 흩뿌려 그린 듯하다. 마을 전체가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 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발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벽면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예술작품이 되어 있다. 고갯길 한쪽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린왕자 모형 옆에서 나도 잠시 걸음을 멈추어 마을 풍경에 젖어든다.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풍경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자리 잡은 것도 아니다. 그저 골목길 풍경일 뿐인데 무수히 많은 사람의 손길이 문화마을을 만들어낸 것이다. 생각 없이 적은 문구가 하나도 없다. 화살표 하나 글귀 하나 모두가 반짝이는 별과 같다. 반듯하지 않은 것들이 그저 사람의 향기와 같아 더 정감 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심리상담 공부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MBTI(Myers-Brigss Type Indicator) 심리 유형 검사는 나를 이해하고 이웃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이 검사는 IQ 검사와 같이 우열을 가리는 검사가 아니라 사람의 유형을 찾고 알아가는 도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MBTI는 심리학자 이사벨 마이어스(Isabel B. Myers)와 캐서린 브릭스(Katherine C. Briggs)가 수십 년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분석해서 선천적 기질을 유형화한 심리검사 도구다. 대학 초년생이던 시절, 처음 MBTI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애매하게만 알던 나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느낌이었다. 아주 뿌옇고 흐렸던 엑스레이 사진이 천연색으로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사진으로 현상된 느낌이었다. 살면서 불편했던 것들과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스스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약점에 대해서 어떤 심리적 요인을 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함께 검사받았던 친구의 결과였다. 친구는 나와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정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친구였다. 나를 항상 답답해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 친구가 너무나 모질게 느껴졌었다. 서로의 유형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동안 서로를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대할 때는 그 친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MBTI는 1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를 하지만 같은 유형이라도 각 지표의 선호도에 따라서 조금은 다르다.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가지는 고유한 특성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법이다. 이곳 감천 문화마을이 아름다운 것은 그 고유함이 모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각과 설계에 따라 반듯하게 만들어진 마을이라면 이곳이 아름다울 수 없다. 이곳은 각자의 사연과 마음이 깃든 정성이 한 올 한올 새겨져 만들어낸 문화마을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달라지고 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책을 놓고 핸드폰과 하루를 보낸다. 좋아하던 책이 책장에 가득히 쌓여있는데 TV 보는 시간만 늘어난다. 내 맘 같지 않은 아이의 모습에 뭐가 문제인지 고민해 보지만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린왕자가 앉은 고갯길 옆에 나도 아이의 손을 잡고 앉아본다. 마음속에 있는 말은 넣어둔 채 아빠가 어릴 때 만났던 어린왕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범한 눈으로는 보지 않던 세상에 관한 이야기. 눈을 감고 꿈나라에 가서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동물과 사물 너머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무궁한 꿈의 향연을 기억한다. 아빠가 만난 어린왕자 이야기다.
  

여기 이 마을이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벽면에 그림이 수놓아지고 사연이 담겼다. 맞고 틀린 것이 아닌 그저 다를 뿐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놓아졌다.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은 이곳과 같았으면 좋겠다. 화려하고 웅장한 것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는 돌담 하나에도 사연이 깃들어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내 욕심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만 자라도 충분한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안상후 장로
청도송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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