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감꽃이 떨어졌다. 엄지손톱만한 배꼽들, 천연스레 낙화했다. 푸른 바람, 맑은 햇살만을 골라먹고 꽃받침 위에 몽우리를 맺어놓았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꽃 진 자리마다 이미 푸른 젖이 부풀기 시작했다. 까치가 수시로 와서 살피고 직박구리도 눈독 들였다. 새들의 입질로 봉긋해진 가슴들, 여물기도 전에 떨어진 풋것들을 모아 항아리 속 소금물에 쟁였다. 세상을 그리 함부로 얕잡아보고 뛰어내리면 안 된다는 것을 풋감들은 몸으로 알았을까. 캄캄한 소금물속에 들앉아 떫은맛을 삭여낸 풋감들이 서늘한 단맛을 물고 나왔다. 한입 베면 어린 것들의 고진감래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감나무에 감이 익어가고 여름도 저물어가는 즈음이면 홍시가 생겨났다. 성미 급한 것들의 손은 헐거워져서 중력을 이기지 못했다. 땅바닥에 파열음을 내지르며 저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소금물에 들어간 풋것들보다 못했다. 이왕 견뎌온 시간이었는데 조금만 더 힘을 냈더라면 제 맛을 지닐 수 있었을 텐데. 아직 깊은 맛이 들지 못한 홍시들에서 진물이 흘렀다. 내버려두면 개미 떼 파리 떼에 앗기며 시큼한 죽음의 냄새를 뿜었다.
상강 무렵이면 감을 땄다. 새부리모양의 간짓대가 가지를 겨누었다. 감나무 가지가 무르다고 쉽게 꺾이는 것은 아니다. 세상 그 어느 나무가 제 여문 열매를 쉽게 내어줄 수 있을까. 감나무를 얕잡아보고 함부로 기어오르는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데에 썼던 그 무름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다. 생명을 눈여기시는 신의 가호는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무른 감나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감을 따려고 나무 위를 살필 때 젖힌 목이 아프다. 간짓대가 가지 사이로 조심스레 파고들었고 곁에서 또 한사람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하늘로 벌렸다. 일단 간짓대의 부리가 감이 달린 가지에 닿으면 살살 달래듯 하다가 단단히 물어서 비틀었다. 이파리와 함께 내려오는 감들, 가을이 채곡채곡 쌓였다. 최상급은 곶감거리로 돌려놓고 나머지는 장독에 들였다. 감나무를 위해 특별히 한 게 없어도 누구에게나 공양거리가 되어주었던 홍시들이었다.
늦가을이다. 청도(淸道) 가는 길, 감나무 가로수 아래에 감잎들이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잎이 크고 두텁고 유난히 광이 나는 감잎들에 가을이 불을 댕겼다. 떨어졌던 배꼽의 연노랑 빛과 소금물 속으로 가라앉은 풋감의 녹 빛과 홍시의 붉은 빛이 한데 어울린 등황색 낙엽이 타오르고 있다. 뭉그적거리지 않고 떠나가는 깊은 가을.
이파리 하나 없이 감들만 주렁주렁한 감나무들이다. 맑은 하늘광주리 속 나뭇가지 채반에 얹혀 속에서부터 조그라져가는 감들. 새들이 날아와 먼 하늘로 가을을 물어 나른다.
할머니의 살얼음 낀 정지, 주름커튼이 드리워진 마법시렁 위에는 쭈글쭈글하고 꾸덕꾸덕하고 달고 말랑하고 찐득한 곶감이 숨어있었다. 나는 겨우내 할머니의 구들방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곶감과 함께 먹으며 보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지만 감나무는 그대로였다.
이제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아진 감나무다. 여전히 아침이면 밤새 떨어진 하얀 배꼽들이 환하게 웃고 태연하게 감들은 자라고 익고 어김없이 간짓대가 나무 위로 올라가고. 할머니의 손등처럼 한없이 쭈그러진 몸피지만 무름하여 더 꼿꼿할 수 있는 감나무다. 아껴놓은 곶감을 건네시며 “제야!” 부르시던, 보고 싶은 할머니의 목소리도 감나무 위에 걸려있다.
올해는 베란다 처마에 감을 달아보련다. 먹성 좋은 까치 한 녀석, 제 밥을 다 먹고도 베란다 감밭을 탐하려나.
설성제 집사
태화교회
울산의빛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