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평 태화강대공원에 오면 십리대숲도 만나고 밤에는 대숲에 떠다니는 은하수 속으로 빠질 수 있다. 대숲 속엔 여름 냄새가 난다. 대숲으로 기어이 파고든 햇볕이 댓잎들과 버무러진 냄새. 그 냄새 속엔 대숲이 옆구리에 끼고 도는 강물 냄새도 들어와 있다. 밤 대숲 은하수 속엔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견우직녀들의 웃음이 흘러 다닌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붙기도 하고 무정하게 스치기도 하는 현대판 견우직녀들이 마냥 부럽기도 할 것이다.
8월 염천의 태화강대공원은 부용화가 너풀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넓은 치맛자락을 뒤집어놓은 듯한 부용화. 가까이서 보면 참으로 속없이 웃고만 있는 우리 옛날 할매들 같고 엄마들 같다. 밭일 들일 가리지 않고 일만 하여 머리에 짚북데기나 먼지를 뒤집어 쓴 듯하고 온몸에 한이 배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정처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우리들의 엄마들, 어머니들. 이들은 염천 아래서도 더위를 타지 않는 질기디 질긴 홑껍데기 속곳처럼 피어있다.
저쪽 배롱나무 길도 가봐야 한다. 뜨거운 태양과 맞장을 뜨다 불이 되어버린 정열의 배롱꽃이 여름을 시원하게 달군다. 손끝이라도 갖다 대면 배롱꽃 속에 손가락이 녹아들지도 모른다. 그 꼬장꼬장한 나무둥치로 얼른 손가락을 빼내어 열을 식혀야 하리. 배롱나무 불바다 길에서 여름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여름옷을 다시 한 번 갈아입는 모양이다. 과연 여름다운 찐한 빨강이다.
태화강대공원에 오면 대나무로 엮은 평상에도 누워보시라. 해질녘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시라. 구름이 뭉게뭉게 땅을 내려다보는 뚱한 표정이 보일 것이다. 여름저녁 해가 물러간 자리에선 붉은 노을도 서늘하리라. 곧 넓디넓은 공원이 어둠속으로 잠길 때 건너편 남산에 숨은 달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별들도 일어날 것이다. 태화강대공원은 봄만 좋아하지 않는다. 봄꽃잔치는 여름의 발길을 위한 서곡이었다는 사실. 여름이야말로 태화강대공원의 계절임을 와보시면 안다.
설성제 수필가
태화교회
울산의 빛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