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이 우거진 산과 들, 보릿고개의 꼭대기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있으면서도 누렇게 익은 보리밭을 보며 보리밥이지만 헛배 부르도록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무심하게도 견딜 수 있었던 희미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내 고향 6월은 그렇게 희망으로 소박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습니다.
6.25 전쟁. 또 다른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보리타작 마당의 희망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더 이상 일어설 수조차도 없는 분노와 슬픔이 타작마당을 짓이겨놓았습니다.
그래서 공산당이 싫었습니다. 자기들 편에서 민족해방이라는 구호와 선동이 얼마나 많은 자기 백성들을 짓밟아 왔는지, 피로 물든 조국, 금수강산,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6.25를 경험하지 않은 저로서는 어른들로부터 전해 듣고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지식대로 눈이 도깨비처럼 빨갛고 늑대처럼 무시무시한 공산당, 내 반쪽짜리 조국을 생각해왔습니다. 빼앗겨버린 조국의 반쪽을 되찾겠다는 민족의 자존감으로 버텨왔습니다.
대학 생활은 유신반대 데모대의 선봉에서 최루탄을 밀가루 뒤집어쓰듯 눈물 반죽으로 분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끌려가서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아니라 뺑뺑이의 한을 새겨 가는데 부마항쟁, 광주사태(당시 표현)로 M16에 착검을 머리맡에 두고 5분 대기조로 쪽잠을 자며 지새웠습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내 불편함 때문에 시대를 탓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북이 오가고, 금강산이 열리고, 헐벗고 굶주린 빼앗긴 반쪽 조국 백성들에게 빵 공장을 지어주고, 비료를 보내고, 비타민 공장을 지어줄 때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조국 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는 한결같이 거룩한 민족애로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빼앗긴 고향을 그리워하며 참아 눈조차 감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우리의 영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6.25가 북침이라고 해도 그런가? 어떻게든 통일만 되면 되는가? 주체사상이 성경을 능가하는가? 공산당식 적폐청산도 괜찮은거지? 거짓과 선동마저도 아름답게 보여지는 로맨스인가?
우리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이 뭐라고 결론 내릴 것인지 고민도 없이 몇푼의 복지(?)에 영혼을 팔아버리는 슬픔이 목을 치밀고 올라옵니다. 성경의 가치보다도 능한 정치사상과 교육이념, 경제 논리, 사회현상, 6월의 장미보다도 더 화려한 환상들이 울타리를 넘고 있습니다.
6월의 푸념은 끝도 없습니다. 내 고향 6월은 푸르름으로 충만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어왔습니다. 땡볕 여름을 지나면 벼가 익는 가을이 있었습니다. 등 따시고 배부른 겨울밤에도 삭풍을 이겨내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내 고향 6월이 보고 싶습니다.
진영식 목사(소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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