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다는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장을 보겠다고 한다. 시작은 그럴듯한데 과정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끝장을 보겠단다. 그 말을 되씹어보면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다. 부정적인 결과를 본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한 번 내디딘 걸음을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벼랑 끝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내딛게 된다. 결국, 어떻게 될지 뻔하다.
이쯤에서 내디딘 걸음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지혜다. 지금이야말로 지혜가 필요한 때다. 그만큼 갔으면 된 것이다. 주저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고집을 부리고 탐욕을 부리다 보면, 그러한 교만이 패망이 된다. 그럴 줄 알면서도 끝장을 보겠다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렇게 거짓에 속고, 위선에 휘둘리면서 간다. 파괴적 본능의 속살이다.
새해는 시작이다. 며칠 지나 보고 잘못된 길임을 깨닫는 순간 궤도를 수정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드웨어가 있고 소프트웨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 나름대로 소프트웨어를 정리하다 보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해 아래서 새것은 없다. 작년에도 그렇고 재작년에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그렇고 내년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새해에는 날마다 새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날마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아침 해가 떠오르듯이 그랬으면 참 좋겠다. 저녁 해거름이 되어 해가 서산에 진다고 서러워할 것은 없다. 짧지만 긴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동이 터 오르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거짓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도 거짓이 난무하고, 가짜가 진짜를 능가하는 세상에 속아 지내다 보면 모든 것이 혼돈이다. 뒤죽박죽이다. 이미 세대는 포스트모던에서 나타나고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부터는 도통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 되시겠다는 분들부터 거짓말이 능하다고 한다. 얼마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능력이 되고 절대가 된다. 그분의 탓만은 아니다. 이미 그러한 분들이 그렇게 해오셨기 때문일게다. 공정과 정의의 샘이 되어야 할 청와대로부터 거짓으로 오염된 물이 방류되어 왔다. 백성들은 그대로 믿어왔고, 지금도 그래도 믿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팬클럽까지 만들어서 그 물이 생수라고 한다.
거짓의 생수에 오염된 백성들은 그 맛에 길들어 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마저 거절한다. 그래서 파괴와 죽음이 온다 해도, 그래서 더욱 행복해질 거라고 부추긴다.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이 아니라 거짓에 미혹된 타락된 본성에 맛 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위선에 열광한다. 실체보다도 가면을 더 좋아한다. 천사의 말을 하고 비너스의 몸매로 아데미의 수많은 젖가슴에 육체의 풍만한 만족이 있다고 한다. 보다 더 나은 풍요로운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속아 지냈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에 불과하게 되고, 그러한 신들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먼지로 사라졌다. 아데미 여신에게 열광했던 에베소는 유적으로 남아있다. 황폐해질 대로 폐허가 되어 묻혀있는 것이다.
능력이란 누가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누가 가장 멋스러운 위선으로 속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교만과 탐욕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들이 대선 정국의 핵심에 보좌를 틀고 앉아 있다.
새해에는 제발 거짓과 위선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런 거짓과 속임수, 위선의 가면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는 거짓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위선의 가면을 뒤집어쓰려고 한다. 결국에는 파괴다. 죽음이다. 사단이 그랬다. 사단에게 매혹된 역사가 그랬다. 나도 그러해 왔다. 나 역시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할 자는 누구인가? 대통령님, 그러한 세상을 열어주실 대통령님은 어디 계시는지요?
진영식 목사
소리침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