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찾아보기 드물 정도이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만 해도 놀이터마다 ‘시소’라는 것이 있었다. 한가운데 축대를 지렛대처럼 세우고 기다란 나무 봉으로 좌우 길이를 같게 해놓았다. 마주 보고 둘이서 탈 수도 있고, 여럿이 탈 수도 있다. 아이들 둘 셋을 한쪽편에 태우고 아빠는 맞은편에 타도 총 무게에 따라 기울기를 다르게 할 수도 있고, 힘을 써서 기울기를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명히 기울기를 맞춰놓았을 텐데도 언제나 한쪽은 하늘로 치솟아 있고, 다른 한쪽은 땅에 처박혀 있다. 아무리 수평을 맞추려고 노력을 했어도 시소의 무게 중심은 어느 쪽으로든지 쏠리게 마련인가 보다. 누군가 맨 마지막에 올라탄 아이가 어느 쪽으로 기울기를 생각 없이 두고 갔겠지만, 시소는 밤새도록 몇 날 며칠이고 그런 모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좌우라는 시소의 마주 보는 한편은 좌가 되고 한편은 우가 된다. 오른쪽, 왼쪽을 구분 짓는 것 또한 어느 쪽에서 보느냐는 차이다. 선악의 구별도 어쩌면 마찬가지일 게다. 선악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소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무게 중심이 어디로 기우느냐에 따라서 선악이 나누어진다.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나무 봉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이단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단이 어디에선가 솟아나고, 공중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반대쪽 끝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또한 어떠할까? 우리 삶의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 반대편에서 시소 게임을 하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은 어떠한가? 희망의 끝에는 절망이 있고, 절망의 맞은편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쪽 끝과 저쪽 끝, 결국은 기울기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는 것인데, 시소야 놀이라 즐겁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고, 친구나 가족들끼리 행복을 만들고, 추억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연인들끼리는 사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게 따져 들게 되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단과 극단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 해도 기다랗게 놓인 나무 봉을 보면 기울기를 어느 쪽으로 할 것인지, 그 선택은 시소를 타는 아이들의 몫이다. 어떤 아이는 시소 한가운데 축 위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기도 하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자기가 원하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익한 쪽으로 조금만 힘을 써도 기울기는 달라질 수 있다.
‘좌파, 우파, 진보나 보수의 차이는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니라 같은 세상, 같은 시공간 속에서 시소 게임을 하고 있다. 눈치 빠른 중도세력이 어느 쪽에 힘을 살짝 실어 주느냐에 따라 세상은 좌우, 진보나 보수로 나뉘게 된다. 그 기울기에 따라 시소는 널뛰기하듯 공중으로 치솟기도 하고, 땅으로 처박히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겁많은 아이들은 혼비백산하고, 울어 젖히다가 그만 떨어지고 말면 내동이 쳐진 아이는 흙투성이가 되고 상처투성이가 된다.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들 하신다. 좌우, 이쪽저쪽, 이 당 저 당, 보수와 진보……. 그렇게도 무성한데 막상 찍어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누군가 그랬다. “덜 나쁜 사람에게 찍어주면 된다.”라고. 자기편에 힘을 실어내기 위하여 여기저기 동분서주하는 모양새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토록 겸손하시고 백성을 위하신다던 분들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나면 전혀 달라지신다. 구중궁궐이라서 그러하신지 간간이 어명만 들릴 뿐이다.
교회마저도 극단이다. 참 이상하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 자기 사상과 이념, 가치와 철학을 포기할 수가 없다. 자기 경험이나 학습의 범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신앙마저도 자기 것에 굴복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정의와 공정이라고 한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시소가 있다. 어느 쪽으로 기울기를 맞춰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정치와 민생이라는 시소는 어떠해야 할까? 성경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조금만 분별할 수 있으면 된다.
신학적 가치와 주장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면 된다. 교단과 교리라는 형식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면 된다. 유다가 멸망한 것은 율법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 팩트다. 당신은 시소의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 성경 속으로 걸어가시라. 그러면 가까운 천국이 열릴 수 있다. 당신이 살짝 힘을 실어 주는 곳이 지옥에 가까울 수도 있다.
진영식 목사
소리침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