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는 울릉도 오징어라야 제맛이다. 동해안에서만 잡혔던 오징어가 기후환경 변화 탓인지 요즈음 서해안에서 더 많이 잡힌단다. 오징어 배가 밤바다를 불빛으로 수놓은 것을 보면 그만한 환상 또한 드물다. 밤샘 낚시질에 지친 어부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는 밤바다가 아름답다. 밤바다에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려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징어가 넷플릭스에서 만선이란다. 오대양·육대주 그 어디쯤엔가 있는 바다인 줄 알았는데 내게는 신비의 세계 인터넷의 가상공간이라고 한다. 코로나 펜데믹에서 세계인들이 자기들이 놀만 한 바다를 찾다가 시시때때로 바뀌고 있는 넷플릭스라는 바다에 넋 놓고 풍덩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자기만의 놀이 공간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분주하면서도 가장 재미나게 지낼 수 있는 바다다. 수십 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작은 방 한켠, 쓸 만한 모니터 하나만 제대로 세워질 수 있다면 최상의 여행조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어쩌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 화면 몇 번 터치하면 내가 원하는 나만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다. 그 바다가 자기 세상이고 우주가 된다. 거기에 철학이 있고 상식이 있다. 무엇보다도 볼거리가 있고 대리만족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가득하다.
폭력이 정당화되고 설움 당한 약자들이 복수할 수 있는 공간도 된다. 집 없는 자의 설움은 마피아의 저택마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이상적인 몸매의 남녀가 뒤엉켜 사랑을 빙자한 욕망의 늪에 허우적거려도 탓할 자가 없다. 합리적인 면죄부가 된다.
세상천지 어디에 이런 바다가 있을 만한가? 거기서 너도나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넷플릭스라는 바다에 빠지고 만다. 그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팔아버린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선악과가 즐비한 에덴동산을 칭송하게 된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주신 넷플릭스 신을 열광하고 있다.
요즈음 그 바다에 오징어가 풍년이란다. 전 세계 76개국에서 골고루 나타난 만선의 현상이다. 오징어 게임이다. 한류를 넘어 이제 세계 문화의 선두에 우뚝 섰다. 뭣이 그리 대단한지 미국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통제된 중국에서까지도 인기라고 한다. 유명인들이 주인공들의 녹색 추리닝을 입고 패러디에 열중하고 있다. 세상은 어찌하여, 왜, 그토록 열광하고 있는가?
내게는 어린 시절에 동무들과 함께 놀았던, 신나지도 않았던 놀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 외쳐 부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부르는 소리다.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소리한 것이다. 술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이 뭔지도 모르던 아이들이 동네에서 모여 산과 강, 들과 바다를 헤매다가 그것도 싫증 나면 그때 동네 마당에 모여서 줄을 긋고 짝지발로, 아니면 두 발을 동동거리며 해 질 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집마다 자기 새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뛰놀던 놀이다. 헤어지는 마당에서는 그날 흔적들을 발로 쓱쓱 밟아 지워버린다. 내일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징어 게임이 456억을 차지하기 위한 탐욕의 빛으로 다가온 것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456명이 456억 원을 향해 승자독식에 서약하면서 자기 목숨까지 내놓겠다며 아우성질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게임 같은 현실 세계에서 마지막 승자가 되기 위한 욕망은 과연 어디에서 끝날 것 같은가? 온갖 거짓과 술수, 위선과 선동, 사기와 폭력, 이런 모든 것들이 합리적 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런 죽음의 게임에 스스로 서명을 한다. 죽음보다 강한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마저 던질 수 있는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런 메시지를 들으면서도 마약에 취한 중독자들처럼 달려든다. 좀비들의 포장된 아름다움이 아닐까? 거기에 인간의 선과 진실함이란 무엇인가? 결국, 게임을 만든 자의 의도대로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인데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 가능성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을까? 죽음과 파멸만 남길 뿐이다.
정치계에서 오징어 게임이 한참 진행 중이다. 승자독식뿐이다. 모두가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이 입고 있는 녹색 추리닝을 단단히 입고 있다. 온갖 권모술수, 중상모략, 거짓과 선동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넷플릭스 바다다. 그 파도가 쓰나미가 되어 삼켜 버릴 세상에 대해 어느 누구 하나 꾸짖는 사람도 없다. 얼마나 거짓에 익숙하고 선동에 동원되느냐 에만 열중하고 있다.
넷플릭스 바다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만선의 기쁨으로 흥분되고 있는 때 은혜의 바다에서 눈물로 바닷물의 소금농도를 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눈물 한 방울을 넷플릭스 바다 위에 뿌려야 할 때가 아닌가?
진영식 목사
소리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