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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대장동

 

  내가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한 것은 줄반장으로 학급을 대표할 수 있었다는 것보다도 학생 전체를 대표하고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때였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말이었다. 한 학년에 두 학급이었으니까 전교생이래 봐야 여섯 학급 360여 명이 되는 작은 시골 중학교였다. ‘재건 학생회’라는 이름으로 학생 자치를 수업하기 위한 학교의 배려였던 것 같다. 5.16군사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혁명공약」을 외워야 했고, 국민 교육 헌장을 암송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조국 근대화를 위한 주춧돌이 될 수 있었을 게다.
 

  내일이면 전교생들이 투표하는데 나를 돕는 친구들과 더불어 학교 앞 점방(매점)에서 결의(?)를 다지기로 했는데, 마침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좁은 점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한마디에 모두 박수를 치는데, 한턱내면 표를 몰아주겠단다. 쥐뿔도 없었던 내가 소리만은 대단했다. “그래 그까짓 거 한 번 먹어봐!” 그날 점방의 풀빵은 동이 났다. 미리 준비해둔 밀가루 반죽과 팥소가 동이 났던 것이다. 마지막 계산을 하는데 지금 떠오르는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70원 정도였을 것 같다. 공납금이 400원 정도였을 때니까 그리 적은 돈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회장에 당선되었고,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양계장을 집 안에서 할 수 있었다. 집안 살림이었는데 계란 한 개 값이 몇 십전도 되지 않은 때인 것을 생각하면 나는 엄청난 부모찬스와 계란 찬스를 엎고 재건 학생회 회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때의 교만함과 거만함이 지금의 자존감으로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해인가 교단의 정치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전직 총회장을 경험한 가까운 한 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총회장이 되는데 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습니까?’ 망설임 없는 대답은 간단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는 팔아야 할거요!’ 아파트 한 채가 아이 이름인가? 지붕 덮인 하꼬방(판잣집) 하나도 마련할 수 없는 처지에 언감생심, 그러면서도 그 돈이면 세계 일주하겠다는 강한 부르심(?)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두를 내본 적이 없다.
 

  작은 감투하나만 써도 가까운 분들을 섬김(?)에 만만치 않게 쏠쏠하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고 더구나 반대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가 없다. 서로가 얼마나 신뢰하면서 의리를 지켜갈 수 있느냐는 것은 그만한 희생의 대가(돈)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마저도 등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이성적인 그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대장동」 그것이 어디쯤에 있는지, 누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여기저기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나니, ‘아, 그런가보다.’ 할 수준이다. 내게는 올려다볼 나무도 아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이토록 관심이 가고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 된다.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누군가는 그런 세상 속에서도 그렇게 사는 것이 되는 것인데….
  

  시장님이 되고, 의원님이 되시고, 대통령이 되시는 분들, 되시려는 분들은 어찌 어찌해서 하룻밤 사이에 되지는 않을성싶다. 내 작은 경험 하나만으로 봐서도 유리알 들여다보듯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면죄부가 되려고 한다. 죄를 더 많이 짓고도 더 나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그것이 면죄부가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는 온통 의로운 사람들이 가득하다.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거룩한 사람이 되어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고 한다.
 

  거짓과 음모, 술수와 폭력, 돈과 인맥…….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면죄부를 얻으려고 한다. 이것이 정치다. 어쩔 수 없이 정치 한복판에 내가 서 있게 된다. 낙심해도 포기한다고 해도, 못 본 척한다 해도 내가 있는 곳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정치인이 된다. 정치란 참 좋은가 보다. 법관의 양심마저도 정치판으로 쓸려가는 세상이다. 문제는 그러는 본인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한다. 누군가 1원도(?)라는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재건 학생회 회장 선거 전날 밤 70원어치 풀빵이 선거법에 위반되는 걸까? 그렇다면 당선이 취소되는 건가? 가까운 친구들도 먼 친구들마저에게도 이미 까마득하게 잊혀진 사건이다. 그러한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 무슨 이득이 서로에게 있을 건가? 40년이 훌쩍 넘어 50년 가까운 지난 과거사가 내 발목을 잡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명예롭고 나는 여전히 자존감이 있다.
 

  대장동, 내게도 기회가 되었다면 열대여섯 번이라도 기웃거릴 만도 하다. 그런데 내게 뿐만 아니라 절대 절대 절대다수에게는 그런 기회가 있는지조차도 모르게 지나간다. 그 절대자들께서 정의와 진실을 소리쳐 외쳐대고 있다. 절대자 앞에 굴복하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이고 네가 살 길이며, 나라가 살길이라고 한다. 나는 또 순종의 선을 넘어 굴복 내지는 굴종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먹이 사슬의 최상층으로 향한 욕망으로 내 영혼을 팔아버린다. 이럴 때 영끌이라도 해야 하는데, 몸 둘 곳이 없는 내 처지이다 보니 마음 둘 곳도 없다. 누가 이런 마음을 살 사람은 어디 없을지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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