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학번인 사람들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푸념을 이해할 수 없다면 새로운 세대인 것은 틀림없다.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다면 이미 꼰대임을 어디에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는 장발을 하는 것을 유행의 멋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들을 피하여 골목길로만 다니는 것이 젊은 스릴을 느끼게 했다. 그때도 꼰대들은 여전히 있었다. 꼰대들은 청년의 멋을 낸 장발을 산발이라고 했다. 단속에 걸려들면 어김없이 바리깡(이발기)으로 머리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고속도로를 낸다. 그것 또한 저항이라고 하면서 며칠이고 우악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즐거움(?)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미니스커트 길이를 할 수 있는 한 짧게 해야만 멋스럽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30cm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릎 위 15cm, 25cm를 재고 있는 경찰의 공권력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허벅지 속살을 훤히 드러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때도 꼰대들은 경찰의 폭력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수입된 히피문화가 무엇인지? 저항문학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이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해 본 것이다. 나름대로의 시대정신이고 저항문화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데모대의 앞장에 서서 체류탄에 취하여 눈물 콧물을 줄줄이 흘려댔다. 그런 경험이 많을수록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민주화 투사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장발, 미니스커트.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저항이라고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가의 편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반동세력이다. 저항과 반동사이에 아직 분명한 경계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이고 보면 무어라 뚜렷하게 이것이다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말로 풀어내면 관종(관심종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 또한 관종주의자인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아쉬움이 있다면 차라리 슈퍼 관종이 되었다면 저항 세력의 핵심이 되었거나 반동세력의 DNA가 될 수도 있었겠다. 꼰대들 역시 관종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럴 바에야 수퍼 관종이 되어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팔로워들을 거느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가까운 목사님 한분과의 만남에서 그분은 은퇴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수염을 기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리도 내 생각과 같은지 박수를 저절로 치고 싶었다. 장발을 하고 수염을 기르고 거기다 도포까지 차려입고 나면 어김없는 슈퍼 관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관종주의자다. SNS의 물결 속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는 세대에는 꼰대라고 손가락질 받을 테지만 꼰대라고 해서 슈퍼 관종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내가 대학생활을 저항(?)으로 폭력에 맞설 때 그때도 여전히 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 꼰대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루어 놓았지 않았는가? 관종주의자인 새로운 꼰대의 등장이 또 다른 대한민국의 미래를 수놓을 수 있는 것일게다.
화가 복받치셨던 할머니께서 동네 앞 너럭바위에서 푸념하시듯 두 다리 쭉 뻗으시고 울먹거리시며 외쳐대시던 소리가 쟁쟁하다. “요놈들아 너거들도 얼마 안남았데이” 어느새 꼰대의 대 반열에 깊숙이 들어있는 관종주의자인 내가 똑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슈퍼 관종이 될 수 있을까? 유튜브라도 기웃거릴 수밖에 없겠다. 관심종자들이 널뛰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