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부산 중앙동에 소재한 괴테(독일문화원)를 1년 넘게 다녔다. 독일어 공부를 위해서다. 언제부터 독일어가 수많은 유럽언어들 가운데 중요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독일어가 유럽에서 중요한 언어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로 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괴테가 독일어를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과장해서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천재문호 괴테가 있다. 괴테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평온한 낭만주의자로 부르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예언자적 슬픔을 갖춘 회의주의로 보는 이들도 많다. T.S. 엘리엇은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인’이라 불렀고, 앙드레 지드는 ‘비범한 평범성’을 가진 사람이라 불렀다. 나폴레옹은 에르푸르트에서 괴테를 만난 후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라고. 프리드리히 니체(Fridrich Nietzche)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괴테를 극찬했다. 괴테는 독일의 자랑이며, 독일문학은 괴테 전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다.
괴테는 1749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민이었지만,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유복한 어린 시절을 지냈다. 어머니는 어린 괴테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었는데, 특이한 것은 아들에게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린 괴테 스스로 결말을 상상하도록 유도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인 괴테는 이미 조부모님께 시를 지어 보내기도 했다. 시의 수준이 어린아이의 어휘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변호사로도 활동하던 중, 23살에 자신이 겪었던 사랑 이야기로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을 발표했다. 전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때부터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자신의 절절했던 청분의 불같은 사랑을 경험으로 쓴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으로 유럽 전역의 정치가와 왕족이 괴테와 만나고 싶어 할 만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유명세를 탄 그는 바이마르공국의 재상으로 공직생활을 10년간 하게 된다. 답답했던 공무원 생활을 도망치듯 탈출하여 이탈리아로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 『이탈리아 기행』이다. 『파우스트』는 사실 23세 때 출간된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하기도 전에 스토리를 미리 짜두었던 작품이다. 60년 만에 완성한 평생의 역작 『파우스트』는 결국 괴테 사후에 2부가 발표될 정도였다. 독일의 자랑이 된 그는 평민으로 출생했지만 1782년에는 황제로부터 귀족의 칭호를 하사받게 된다.
괴테의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다. 한 두 명이 아니었는데, 자신과 연애했던 여인들의 이름들을 작품에 모두 등장시켰다. 모든 작품의 기반이 사실 괴테가 평생 사랑한 여인들과의 러브스토리와 사랑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괴테의 첫 사랑은 ‘그레헨’이었고, 『파우스트』에 등장한다. 그의 두 번째 연인 ‘샤를로테 부프’는 괴테 친구의 아내가 되었다. 실패한 사랑의 절절한 아픔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을 통해 승화시켰다. 괴테는 인생의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랑꾼이었다. 빌레머 부인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그녀를 사모하여 『서동시집』을 써 발표하기도 했다. 82세까지 장수했던 괴테의 모든 작품들은 그의 경험에서 곰삭아 나온 것들이었다.
괴테의 인생을 보면, 한 사람이 이만큼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이마르공국에서 정치가로서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법학, 박물학, 지질학, 색체론 등 인간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더불어 식물학자로서도 많은 영향을 남겼다. 소년시절부터 노년까지 그의 시를 담은 『괴테 시 전집』은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춘의 불같은 사랑을 가진 이들이라는 뜨겁게 공감될 책이다. 『이탈리아 기행』에서 괴테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술가임을 확인한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18세기의 이탈리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의 제자였던 에커만이 인생, 예술, 학문과 사랑에 대해 괴테와 나눈 대화록이다. 괴테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많은 명언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니체가 끔찍하게 아꼈던 책이기도 하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 것을 강조하고, 오지도 않을 미래는 생각지도 말라 말한다. 니체의 사유와 많이 닮았다.
『파우스트』는 독일에 실제 존재했던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다. 성경 『욥기』의 스토리와도 많이 닮았다.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스토리가 괴테가 쓴 『파우스트』이다. 비극과 구원, 선과 악, 신과 악마가 등장한다. 총 2부,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그레트헨을 통해 보여주는 은혜를 통한 구원이야기라면, 오랜 시간 뒤에 출간된 2권은 낭만주의시대의 아이답게 자아실현을 통한 구원을 그려내고 있다.
악마 메피스토텔레스가 하나님과 내기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 파우스트는 엄청난 공부를 한 노학자였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해 사느냐 죽느냐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자살을 고민하던 그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개의 모습으로 파우스트 앞에 나타나 계약을 제안한다. 무의미에 시달리는 파우스트에게 쾌락과 행복을 선물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파우스트는 악마를 믿을 수 없다고 손사레 쳤지만, 악마의 설득은 섬세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파우스트의 종이 될 터이니, 죽고 난 후에는 자신의 종이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후세계 따위는 자신에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 그는 계약에 동의하게 된다.
결국 악마의 꾐에 빠져 영혼을 건네주는 조건의 피의 계약서에 동의했다. 가장 먼저 늙은 마녀를 찾아가 약 하나를 건네고, 이 약은 파우스트가 젊어지는 묘약이었다. 약을 먹고 젊어진 청년 파우스트는 한 처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레트헨 이라는 처자 역시 파우스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사랑인지 욕정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품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함께 밤을 보내기를 갈망했던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에게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먹이라고 말했다. 그레트헨의 어머니는 수면제를 먹고는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격동시켜 그레트헨의 오빠 발리틴을 찔러 죽이게 되고, 이로 인해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레트헨은 아이까지 물에 빠뜨려 죽이게 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레트헨을 찾아간 파우스트는 그녀를 돕고자 했지만, 그를 알아보지 조차 못한다. 마지막 순간 파우스트를 알아본 그녀는 함께 도망하기를 원했던 파우스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레트헨의 영혼은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1부는 마무리 된다.
2부는 1부가 나온 지 20년 뒤에 죽기 한 해 전에 완성되었다. 1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개인적 욕망과 구원보다, 보다 확장된 사회와 국가를 통한 자아실현의 장으로 나아간다. 파우스트와 악마는 독일황제가 처한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는다. 황제는 파우스트에게 그리스 전설의 미녀 헬레나를 불러오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경솔히 승낙한 그는 악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을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의 안내를 따라 물질의 세계와 다른 세계로 진입하여 향로를 얻고 돌아오려 시도하지만, 실패했다. 파우스트는 AI 호문쿨루스를 제작하고 있던 조수 바그너를 찾아간다. 메피스토텔레스는 호문쿨루스에게 헬레나를 찾도록 도와 달라 요청하고 승낙을 받는다. 놀랍게도 호문쿨루스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헬레나에게로 안내한다.
헬레나는 위험을 피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있는 성으로 도피해 온다. 그렇게 만난 헬레나와 파우스트는 부부가 되고, 둘 사이에 아이도 태어난다. 바로 오이포리온이다. 아들은 부모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험한 모험을 시도했다. 하늘 높이 비상하기를 꿈꾸었던 아들은 결국 허공에 몸을 던지고,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여 떨어져 죽고 만다. 헬레나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아이 곁으로 떠난다. 파우스트는 홀로 남겨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파우스트는 더 이상 쾌락에 질렸고, 무언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기를 원했다. 마침 황제가 전쟁의 위험에 처해 있었는데, 전쟁의 한 복판으로 달려가 공을 세운다. 이 공로로 해안가의 땅을 하사받게 된다.
파우스트는 얻은 영지에 제방을 쌓고 물길을 막아 땅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파우스트는 다시 늙은 노인이 되었다. 많은 부를 이루었고, 하고자 했던 많은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성취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가지 문제로 불행에 빠져 있었다. 보리수가 심겨진 언덕에 있는 집을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언덕에 사는 노인들이 그 집과 보리수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그 거대한 땅을 가지고도 미미하기 짝이 없는 보리수나무와 집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노인들이 다른 곳에 이주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땅을 대신하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지 못한 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노인들을 보리수 언덕에서 쫓아내라 명령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악마답게 언덕 위의 집에 불러 질렀고, 노인들을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탐욕으로 인해 노인들을 죽게 만들었다. 파우스트의 성으로 할멈 4명이 다가오는데 그들의 정체는 ‘결핍’, ‘채무’, ‘근심’, ‘궁핍’이었다. 그녀들 중 ‘결핍’과 ‘채무’, 그리고 ‘궁핍’은 돌아가야 했다. 파우스트는 부자였기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심’은 열쇠를 파고들어 들어간다. 떠나가던 세 할멈은 떠나가면서 말한다. 자신들의 오빠,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이다. 근심은 파우스트에게 찾아가 말을 건다. 파우스트가 물리치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근심은 파우스트에게 저주를 걸어 눈을 멀게 만들어 버렸다.
파우스트에게도 생의 끝이 다가왔다. 생애 마지막 날, 그는 생각했다. 매일매일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만이, 자유와 생명 역시 얻을 자격이 있다고. 평생에 걸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파우스트는 “머물러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를 외치고는 쓰러지고 만다. 저 세상으로 떠날 때를 기다렸던 메피스토펠레스는 이제 파우스트가 자신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영혼을 취하려 했다. 그 순간, 천상의 무리들은 메피스토펠레스를 홀려 파우스트의 영혼을 건져낸다. 하늘로 간 파우스트는 속죄의 여인, 그레트헨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결국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게 되고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많은 학식을 가졌으나 삶의 의미를 몰라 괴로워했던 파우스트는 자기 영혼을 던져서라도 자기실현을 시도한 사람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실존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자신의 영혼을 던져서라도 얻고자 하는 욕망, 성취는 도대체 무엇일까? 파우스트와 같은 존재는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괴테에게 파우스트가 있다면, 니체에게는 차라투스트라가 있고, 카뮈에게는 시시포스가 있을 것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유목민이나 리좀이 있다 할 것이다.
『파우스트』는 우리 앞에 두 가지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자기부정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실현의 길이다. 1부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말한다. 인간 스스로에게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구원론이다. 이와 달리 2부에서는 자기실현의 유토피아 건설을 통한 세속적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다”는 격언이 성취되고 있는 작품이다. 제방을 쌓고 땅을 개간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이 땅에 실현해 나가며, 이로 족하다고 자평하며 숨을 거둔다. 괴테는 최선을 다해 자아를 실현한 인생이야 말로 구원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결론 맺고 있다. 영혼을 팔아서 까지 자기실현을 구하는 낭만주의적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작품이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할까? 「전도서」에 등장하는 다윗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의 이야기는 그 결론이 사뭇 다르다. 동일하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 쾌락과 지상의 유토피아 건설에 매진하지만, 그의 결론은 다른 데 이른다. 그는 인생의 헛됨을 논하며, 온갖 낭만적 사업과 유토피아적 사회의 실현에도 허무를 지우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쾌락도 헛되고, 지혜자나 우매자의 죽음이 일반이며, 온갖 산업과 노력조차도 헛됨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전도자는 권한다. 인생의 무의미가 다가서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전12: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문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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