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적 사고와 삶의 분리 문제,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질문들에 직면한다. 하늘에 속했지만, 이 땅을 살아가기에 다가오는 물음들도 복잡하고 쉽지 않다. 섬기는 교회에 정말 바쁜 집사님이 한 분 계신다. 촌각을 다툴 만큼 분주한 일터에서의 씨름 속에서도 예배 한 번 빠지지 않는 신실한 분이다. 노모와 아내 4명의 자녀까지 살뜰하게 챙겨서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한다. 하루는 물어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바쁜 사업으로 인해 일터에서 소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교회 중심의 삶이 흩트리는 것이 아닐까 염려해서였다. 하나님의 일과 세상일에 대한 이분법적 분리가 옳지 않다고 차근하게 설명해 드린 기억이 있다.
이원론적 사고와 이로 인한 삶의 분리 문제는 우리 시대에 적지 않은 문제다. 복음과 율법, 진보와 보수, 신앙과 이성, 교회와 국가, 은혜와 자유까지 양극단으로 나누는 일은 분리를 발생시키고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며 신음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하나님은 특별히 은혜 입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이와 함께 불신자들에게도 자비와 호의를 베푸신다. 교회뿐 아니라 세상도 하나님의 소유다. 믿음뿐 아니라 이성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복음과 율법은 나뉘지 않는다. 차별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은총”에 대해 차근히 정돈할 필요가 있다.
따뜻하게 균형을 잡아가는
‘균형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
본서의 저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네덜란드의 호허페인(Hoogeveen)이라는 도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얀 바빙크(Jan Bavinck)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이었던 개혁파(기독개혁교회) 속한 목사였다. 7남매 중 둘째였던 바빙크는 아버지가 사역하던 마을에 소재한 깜픈(Kampen)신학교에 입학해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1년 후 현대신학 교수들로 가득한 레이든 대학교(the University of Leiden)에 가서 공부하게 된다. 보수신학의 전통에서 자랐던 그가 진보신학의 물결 한복판으로 들어간 셈이다. 보수신학을 포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신학에 대한 학문적 훈련을 혹독하게 벼루기 위한 결심 때문이었다.
레이든에서 바빙크는 기라성 같은 신학의 거성들에게 사사를 받았다. 교의학과 신약, 구약과 윤리학, 교회사와 교리사, 종교철학까지 당대의 최고봉들에게 학문적 훈련을 받았고, 츠빙글리의 윤리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목사 안수는 진보신학이 아닌 자신이 자랐던 기독개혁교회에서 받았다. 신학공부시절 끈끈한 우정을 만들었는데, 탁월한 이슬람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흐리스티안 스눅 후르흐론녀(Christiaan Snouck Hurgrohje)이다. 그는 철저하게 자유주의 신학자였으나 이들은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다. 이런 삶과 학문적 위치가 그를 진보와 보수, 정통과 현대 사이에서 따뜻한 균형을 잡아가는 신학자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바빙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실하게 목회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깜픈신학교 교수가 되기 위해 사임할 때, 장로는 “매우 존경받는 교사, 주의 영광스러운 설교”를 상실했다며 애석해했다. 1883년에 교수로 부임하여 1901년까지 가르쳤는데, 교수가 되었을 때의 나이가 28세였다. 10여 년 뒤 그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신학 교수직을 수락하여 1902년부터 인생 말년까지 가르침으로 봉사했다. 1908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유명한 스톤 강좌(Stone Lecture)에서 강의했는데, 이것이『계시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920년 심장마비로 고생하다 카이퍼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67세의 일기로 암스테르담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창조와 재창조,
일반은혜와 특별은혜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최소화하고 균형을 잡아간다”
바빙크는 ‘균형의 신학자’로 불린다. 좌우로 쉽게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성경을 중심하여 신학적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였다.『일반은총』에서도 마찬가지다. 본서에서도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창조와 재창조, 일반은혜와 특별은혜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최소화하고 균형을 잡아간다. 일반은총만 강조하다 보면, 자연주의, 합리주의, 인간론적 낙관주의와 공로주의에 함몰될 것을 경고하고, 특별은총만 강조한다면, 온갖 형태의 신비주의와 초자연주의, 신령주의가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본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일반은총에 대한 개념과 성경적 근거에 대해 말하고 로마교회의 오류와 잘못을 지적한 다음 종교개혁자들, 그중에서도 칼뱅에게서 발견되는 일반은혜에 대한 내용을 톺아낸다. 더불어 일반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앙과 지식, 신학과 철학, 권위와 이성, 머리와 심장, 기독교와 인본주의, 종교와 문화, 하늘의 소명과 땅의 소명, 종교와 도덕, 명성적인 삶과 활동적인 삶, 주일과 평일,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 긴장감을 느끼고 조화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칼뱅과 일반은총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3부에서는 『일반은총』에 대한 바빙크의 전반적인 저작들과 연계한 해설과 생애를 다루고 있다.
“한 뼘의 공간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밖에 머물지 않는다”
일반은총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반은혜(Common Grace)’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에덴에서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의 생명과 삶을 보존하시기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대적하는 이들에게도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은혜를 주신다. 이성과 판단력을 주셨고, 햇살과 공기, 비와 바람을 포함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거두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공급하신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생명을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다. 이를 불러 ‘노아언약’으로 또는 ‘자연언약’으로 부른다. 왜냐하면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8장 21~22절에서 말한다.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으리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생명을 위한 필요를 공급하시겠다는 은혜로운 약속이다. 땅이 있을 동안에 자연을 붙드시겠다는 말씀이다. 생물들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자연의 순환을 질서 있게 운행하시겠다는 따뜻한 약속의 말씀이다. 일반은혜의 기원은 삼위 하나님의 보편적인 선하심에 기반해 있다. 과학과 학문, 예술과 정치, 가정과 공적 삶에서 나타나고 표현되는 모든 선한 것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온 일반은혜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여타의 종교들에 포함된 도덕과 양심에 따른 아름다운 실천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바빙크는 칼뱅과 카이퍼가 강조했던 온 땅이 하나님의 무대이며, 한 뼘의 공간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밖에 머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성도들로 하여금 이원론적 삶으로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잘못된 생각을 치료하고,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 땅에서의 소명을 견고하게 서기를 소망했다. 로마교회는 죄와 은혜의 대조를 자연종교와 초자연종교로, 도덕법도 두 가지로, 사랑조차 두 가지로 나누어버렸다. 초자연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성사의 사효적인(ex opere operato) 집행이 필요한데, 이로 인해 교회와 사제들이 권세를 틀어쥐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의 기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단으로 정죄했던 펠라기우스주의이다. 이러한 사상이 무서운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구원을 위해 행위와 사제들의 도움에 매달리게 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또 다른 나쁜 사상은 재세례파와 소키누스주의이다. 실제로 재세례파의 전통은 중세 로마교회에서 파생했다해도 틀리지 않다. 산상수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맹세의 금지와 천년왕국주의, 현실도피와 같은 주장들은 종교개혁의 전통이라기보다 중세 로마교회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이들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오해하고, 가족과 사회적 일상을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속이며, 마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립시키고 배척했다. 재세례파 사상이 일반은총과 자연질서를 훼손하고 경시했다면, 소키누스주의는 초자연적인 질서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거세하는 사상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육신, 속죄와 신앙의 중심이 되는 신비들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재세례파가 하나님의 창조를 모욕했다면, 소키누스주의는 하나님의 구원과 배척했다. 한 집단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한 집단은 세상을 따랐다. 이러한 극단 사상은 성도들과 교회를 병들게 한다.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풍성한 일반은혜에 감사하며
이웃 사랑으로 살아가라
물론 일반은혜의 한계는 뚜렷하다. 일반은총으로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희미함 속에 놓인다. 영생과 구원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은혜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과 의로움을 얻어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 일반은혜는 특별한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성도들은 불신자들과 구별된다. 하지만 동시에 동일한 땅과 일터,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재세례파 사람들처럼 현실 도피적 삶을 살아가선 안 된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반은혜에 기초하여 피어난 과학과 학문, 문화와 예술, 정치를 포함한 모든 공적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도록 애써야 한다. 차별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선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웃에 대한 따스한 사랑을 품은 아버지를 닮은 자녀로 살아갈 일이다.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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