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장3절
얼마 전 은행직원과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 가게에서 거래하는 카드 입출금과, 각종 공과금의 자동이체를 담당하는 거래 은행이다.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잠깐씩 가게를 비우고 은행에 가서 일을 보고 올 때가 많다. 그날도 공장에 송금할 일이 있어서 가게를 비운 채 은행에 갔다. 점심 교대 시간이어서 직원이 두 명 뿐이었는데 한 직원은 ATM 기기를 손보는 중이었다.
창구에 있는 직원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지점이 생길 때부터 거래를 했기에 순환 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모두 알고 지내는 터였다. 신입사원인가 생각하며 일처리를 기다렸다.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직원이 전화를 받아 응대하고 끊었다. 그런데 내 송금업무는 하지 않고 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다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심호흡을 하면서 점심 먹으러 간 다른 직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비어있는 가게가 걱정되었다. 나중에 다시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송금 시간을 약속했던 터라 직원의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고 있었다.
“저기요, 이 업무 먼저 처리해 주세요. 가게를 비워 놓고 왔어요!”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이 계속 통화를 했다. 식사를 하고 온 직원이 양치를 하길래 다가가서 송금업무를 부탁했다.
가게로 돌아와 물 한잔을 들이마셨다. 이대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서비스를 우선으로 하는 금융업인데 어떻게 고객을 앞에 두고 사적인 전화 통화를 오래도록 한단 말인가? 내가 거듭 재촉했는데도 계속 통화만 하다니 심장이 귓가에서 뛰는 것처럼 쿵쿵거렸다.
본점에 전화를 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사장은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다. 사무실에서는 이번 일과 같은 경우에 정해진 매뉴얼대로 손님 대응을 하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래를 하며 쌓아온 신뢰에 금이 갔음을 느꼈다.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나 하는 마음도 순식간에 들었다.
시간은 흘렀고 창구 마감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그 은행과는 거래를 정리하는 편이 서로 좋을 것 같았다.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지점장은 입구로 나와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다. 앞으로는 직원 교육을 잘 시키겠다는 요지의 말도 했다. 아까 그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기운 없이 서있었다.
나는 오늘로 모든 거래는 끝내고 싶으니 자동이체 되는 공과금과, 그 지점에서 가입하여 관리하는 보험료 등 모든 거래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부탁했다. 본점에서 연락 받았다며 한번만 이해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지점장 앞에서, 나는 곤혹스런 순간을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마감시간이라 다른 손님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황을 종료하고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문자가 들어왔다. 작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다 옮겨간 직원이었다. 본점의 실무자한테 연락 받았다며 이번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의 말을 했다.
은행에서는 우수고객과 이런 트러블이 있으면 무조건 해당 직원을 질책하고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 직원의 부인이 큰 수술을 받고 입원중인데 간병할 사람이 없어서 애를 태운다고 했다. 아까 그 전화도 부인과의 전화 통화였을 거라며 내일 날짜로 휴가를 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요동치며 살아났다. 잠깐 가게를 비운다고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지켜야 하는 거래처 송금이지만 전화 한 통화면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직원의 근무태도를 문제 삼아 윗선에 보고한 소인배의 행동을 했던 것이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고, 저쪽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했다. 입장을 바꿔 저쪽에 서서 나를 투시해 보았다. 출장 간 딸아이와 통화를 하느라 손님 응대를 못한 적이 있다. 기다리던 전화였기에 집중하느라 손님을 기다리게 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딸과 통화하느라 거래처에 물건배달도 하지 않아 곤란한 적도 있었다. 출장지에서 딸이 퇴근 후 전화를 하면, 시차 때문에 여기는 한창 바쁜 영업시간이었다. 통화 하느라 손님들을 기다리게 했고, 요식업소에서 급하게 그릇을 사러왔다가 그냥 간적도 있었다.
이일을 겪은 후,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긴 시간 마음이 아렸다. 오늘도 남의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할까봐 생명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집을 나선다.
김금만
남목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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