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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절대음감

 

  절대음감이라는 매력적인 능력이 내겐 없다. 기타를 삼십 년 정도 쳤다면 눈 감고도 몇 곡은 연주할 법도 한데. 기타 코드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는 악보가 눈앞에 있어야만 겨우 칠 수 있으니 연주라고 할 것도 없다. 노래 부를 때 곁들이는 반주에 지나지 않는다.


  기타를 배운지 삼 년쯤 되었던 고등학교 때였다. 친구가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 기타로 음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연주곡을 연습했다. 일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기타 코드를 쫓아가며 반주만 열심히 하는 반면 친구는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에릭 클립튼의 ‘Tears in heaven’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이었다. 곁눈질로 보니 타브 악보가 보였다. 기타 운지법이 그대로 그려진 타브 악보라면 나도 금세 연주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악보를 구해 연습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도입부 두세 소절만 연습하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절대음감을 은사로 얻지 못한 것이라 여기며 삼십 년 내내 코드로만 기타를 치며 살았다. 


  아내는 절대음감을 가졌지만 피아노를 잘 못 친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다가 손에 땀이 많아 포기했다고 한다. 처제는 절대음감이 없지만 피아노를 잘 친다. 뭐든 끝을 볼 때까지 하는 근성 덕에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업이나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주일 예배 반주를 위해 틈틈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대학생 때부터 직장 관계로 타 지역으로 갈 때까지 스무 해 가까이 대예배 반주자의 자리를 지켰다.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좀 더 일찍 시작하고 싶었지만 악보를 보려면 초등학생은 되어야 할 수 있다며 학원에서 받아주질 않았다. 그런데 동료의 아이가 피아노를 아주 어려서부터 배우고 있었다. 유치원 다닐 나이에 연주까지 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절대음감의 위력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아이가 배우는 학습법이 처음에는 듣기만 한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곡을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지속적으로 피아노 음을 들려주면서 자연스레 익혀가는 것이었다. 듣는 연습만 하고 나니 귀가 저절로 트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아이가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는 아주 장기간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동료와 그의 배우자는 음악적 감각이 없지만 아이는 음을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절대음감도 훈련하면 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포기했던 클래식 기타는 불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 계속 훈련하고 가다듬어 왔다면 나도 클래식 몇 곡은 멋지게 연주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배우고 행하며 사는 것들이 그런 것이 아닐까. 절대음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을 안 해 본 것뿐이다. 절대음감처럼 타고난 재능이 분명한 이점은 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노력과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잘하게 될 때까지 해볼 수 있는 열정이 부족한 것일까.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별한다. 때로는 하기 싫어도 잘해야 할 것까지 헤아려서 성취하며 살게 되는 것도 있다. 악보 없이 클래식 명곡 몇 곡을 연주할 능력은 아니지만 악보를 펼쳐 두고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다. 어려운 공부와 험난한 직장 생활을 하는 처제에게도 피아노는 지친 일상을 견딜 힘이 될 것이다. 아내는 요리와 다른 이를 위해 섬기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절대음감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적도 많았지만 나는 절대음감을 얻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동안 이외의 많은 것을 얻었다. 조목조목 자랑할 만큼 큰 것들은 아니지만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이나 하지 못한 상황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저 내게 주어진 것에 이미 족한 줄 아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다른 것이 참 감사하다. 그렇게 절대음감이 아닌 것들이 어울려서 풍성한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안상후
청도송금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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