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센 마을에 저녁이 온다. 오렌지빛 지붕위로 잿빛 굴뚝 속으로도 석양이 기어들고 주먹만한 수국들이 울타리 안으로 고개를 숙인다.
여행을 온 지 어느덧 한 달. 아무 일을 하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떼려고 길을 나선다. 하필 청색 남방을 펄럭이며 훌쭉한 배낭을 메고 달려가는 한 사람이 보인다. 혹시, 내 안의 좀머 씨인가. 딱 필요한 만큼의 버터 발린 빵과 혹시 내릴지도 모를 소나기 대비용 우비 한 벌이면 족했던 그는 아직도 무엇이 그리 불안하여 저리 급히 뛰고 있을까. 2차 대전 후 독일이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섰지만 끊임없이 움직여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전쟁세대 좀머, 아니 어쩌면 좀머 씨의 후예일지도 모를 저 사람을 따라 딸과 나도 잽싸게 걸어본다.
강이 나타난다. 커다란 돌멩이들의 발 씻는 소리가 찰박찰박 들려온다. 모래톱에 발자국들이 깊다. 우리는 흘림체로 방명록을 쓰듯 어지러이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다. 강의 끝이다. 북해로 연결되는 강, 함부르크의 엘베강이라나. 바로 눈앞에 무역선들이 떠있다. 뱃전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함부르크가 부는 승리의 휘파람 같다.
무역선들이 깃발을 나부끼며 간다. 저 배에 실린 물건들은 이곳의 힘이며 자랑일 것이다. 저 배를 태우고 북해를 건너가는 엘베강은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한다. 부서진 건물과 떨어져나간 피뢰침과 달아난 지붕, 이 전쟁의 회한을 강물 속에 새겨 세계전쟁과 학살에 대한 반성을, 성찰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엘베강은 독일을 세계적인 나라로 돋움 시키는 활발한 무역의 강이 되었다.
울산의 태화강도 그렇다. 현대조선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중소기업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실은 배가 태화강 하류에서 동해로 나간다. 울산의 것이 한국의 것이며, 한국의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향해 간다. 우리나라 경제의 허브가 되는 울산의 자부심이 살아있는 강. 깊고 잔잔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한없이 도도한 강이라 불리어도 좋을 강.
강도 제각각 오고가는 배와 발길에 의해 저마다의 분위기가 다르다. 무역선을 실어 바다같이 웅장해 보이는 엘베강이 있는가하면, 공업과 생태가 함께 공존하는 도도한 태화강도 있고, 흐르면서 자연을 살리는 데 힘을 다하는 샛강들도 많다.
딸이 함께 울산에 있을 때는 서로 바빴다. 그래서 둘이 같이 강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항상 따로따로 강을 좋아했다. 딸이 귀국할 때면 엄마와 같이 바라본 이국의 강을 마음에 품어 올 것이다. 멈춤이 없는 강, 생명을 낳고 기르는 강,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고, 정신을 성숙시키며 순리를 따라 흐르는 사유의 강을 품어 오리라.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흘러가는 잉여의 세월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흐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며 살아있다는 것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기에 그저 시냇물 같았던 딸이 이제 강이 되어 바다로 열방으로 변화되어 나아가리라 꿈꾸어본다.
우리 모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열 길 물속처럼 서로를 훤히 알고 있다. 그 깊은 물길을 일부러 헤집어보지 않는다. 잠잠히 제 길을 낸 강처럼 서로 모른 척 해줄 때가 많다. 사사건건 말하지 않으면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연인관계가 아니라, 사사건건 말할 수 없어도 속속들이 알게 되는 모녀로서 저마다의 강이며 불가분의 강이다.
엘베강을 보고 온 지 일 년이다. 나는 다시 뛰어다녀야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좀머 씨처럼 뛰지 않을 수 없었고, 그동안 딸은 아이를 가져 해산을 앞두었다.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이 저에게 오게 된 것에 감탄할 것이다. 태의 강에서 생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오장육부를 비롯한 모든 신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생명을 주신 이의 기묘함에 다시 한 번 놀랄 것이다. 출산의 기쁨으로 수고와 고통은 머지않아 잊고, 딸은 또 하나의 강을 뻗어 흐르게 하는 모태의 강으로 유장하게 흐를 것이다.
그날 저녁 은빛 배들을 싣고 깃발을 날리며 나아가던 엘베강이 눈앞에 선하다. 북해를 지나 대서양을 넘어 태평양으로 오면 좋겠다. 이곳 태화강에서 뜬 배가 동해 지나 태평양 넘어 대서양으로 마중가면 좋겠다. 세계지도의 한국 땅 동쪽 끝에서 독일 땅 북쪽 끝으로 물결선을 그으며 달려간다.
수필가 설성제
태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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