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오후, 친정집 거실 유리창과 일체가 되어 펼쳐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산마루의 양털 구름은 두둥실 배영을 하고, 겨우내 움츠렸던 새들은 접영 중이다. 봄 햇살에 초록 들녘은 종일 넘실댄다. 고개를 돌려 내다보면 오른쪽 끝자락에 텃밭이 보인다. 부모님이 새벽마다 내다보며 보통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작물들의 임무는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의 정서 함양이랄까.
요즘 아이들은 온라인 학습터에 노출될 기회는 잦아졌지만, 자연의 터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래서 주말만이라도 땅의 숨결을 느끼며 감정적 허기를 채워주려 함께 텃밭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지주 마냥 푸른 천막을 자연스레 걷어내고 각종 농기구를 꺼낸다. 수확 시기는 텃밭이나 사람이나 누구에게든 절정기이다. 깊숙이 숨어있는 굵고 실한 고구마를 발견할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아이들은 기쁨과 뿌듯함으로 충만하다.
텃밭 덕분인지 아이들은 푸성귀로 차려진 시골밥상을 좋아한다. 갓 쪄낸 호박잎을 손바닥에 펼친 채 위로 밥을 소복이 담고 직접 키운 각종 나물을 올려 쌈장을 얹는다. 딱지 접듯 야무지게 포갠 쌈밥. 입은 최대치로 벌리고 함께 딸려 올라간 부메랑 눈썹과 평수 키운 콧구멍이 우습다. 손녀들의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부모님은 고된 텃밭일을 감당할 여력이 되고도 남으리라.
작은 텃밭은 집안에도 있다. 볕이 잘 드는 환경을 이용해 부모님은 안방 베란다에 게발선인장, 제라늄, 프리지어, 히아신스 등 소소하고도 화려한 정원을 꾸린다. 적당한 온도, 빛, 양분, 물과 아낌없이 주는 관심에 호응이라도 하듯 화초들은 쑥쑥 자라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이곳은 어른들에게는 안구 정화, 아이들에게는 사탕 나뭇잎을 한 장씩 뜯어 먹는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공간이다.
관심을 표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부모님은 직접 키워보라며 일명 ‘사탕 나무’라고 불리는 스테비아를 선물했다. 잎을 한 장씩 야금야금 뜯어 먹는 재미와 식물을 가까이하여 오는 감성을 위하여.
스테비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을 주는 허브 식물이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국경 산간 지방이다. 잎과 줄기에는 단맛을 내는 ‘스테비오 사이드’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이 감미성분은 설탕의 삼백 배로써 차를 만들거나 껌 대용으로 쓰이며 청량음료의 감미료로 사용된다. 또한,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있어 항산화 작용을 하고 혈압을 떨어뜨리고 혈당을 조절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아이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귀요미’, ‘사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둘째 아이의 사탕이는 위치선정이 탁월했던지 첫째 아이의 귀요미 키를 훌쩍 넘었다. 곧게 뻗어야 할 줄기가 기울어진 채 자라면 첫째 아이는 자기 것은 아니지만, 지지대도 박아주며 방향을 잡아주었다. 어느 날 아침, 그렇게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란 사탕이는 꽃을 피웠다. 생각보다 앞당겨 찾아오니 기쁨이 더했다. 다닥다닥 붙어 핀 세 송이 꽃들은 세상에 먼저 태어나 몸을 웅크린 채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조산한 세쌍둥이들처럼 아련했다.
그날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하교 후 집에 온 둘째 아이와 더 피었을지 모르는 사탕이를 기대하며 베란다로 갔다. 사달이 났다. 이제는 필요 없게 되어 한쪽에 세워 둔 놀이방 매트가 바람에 흔들려 인근에 있던 귀요미를 습격해 버린 것이다. 터널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중상자처럼 세 줄기 중 한 줄기가 심하게 꺾여 달랑거리고 있었다. 나의 부주의로 골든타임을 놓쳤다.
저녁에 남편이 수습에 나섰다. 더 견실하고 높게 세운 지지대와 스테비아의 줄기를 실로 칭칭 감아 지탱해준다. 며칠 후, 귀요미는 지난 외상은 깨끗이 잊은 채 전보다 잎도 풍성하고 크게 자라며 줄기도 곧게 뻗은 채 잘 자라 주었다.
그동안 창조주의 작품인 자연의 유익을 가볍게 여긴 탓일까. 작은 식물에 불과한 스테비아의 영향력이 크다. 아이들이 다감해졌다. 아침이면 스테비아의 상태를 살피며 위치를 틀어 햇빛 샤워를 시키기도, 환기와 목마름도 해결해준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잎사귀를 한 장씩 떼어 맛보길 권하는데 단맛이 신기해 눈이 휘둥그레지는 친구들 앞에 어깨가 솟는다. 신상 게임기는 아닐지라도, 식물을 귀하고 친근히 대하는 모습은 물질 만능주의와 대조된다.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 속에 아이들은 풍파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스테비아의 강한 재생력처럼, 어려움이 닥쳐도 낙담이 아닌 비상의 디딤돌로 삼는 높은 회복 탄력성을 지닌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스테비아를 키우며 한 뼘씩 자랐던 책임감과 따스함이라는 내면의 힘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자연스럽게 표출되길 소망한다.
주은진
우정교회 집사
'기독문화 > 신앙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의 산책]산대공원의 장미원으로 (0) | 2021.04.30 |
---|---|
43년 전 어느 날의 약속 (0) | 2021.04.29 |
내 눈의 들보 (0) | 2021.03.10 |
절대음감 (0) | 2021.02.15 |
곤고할 때(김용숙) (0) | 2021.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