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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예배당을 짓고 헌당식을 할 때 호계시장에서 대봉감나무를 한 그루를 사다 심었습니다. 대봉감이 크고 좋아서 나중에 따먹으려고 말입니다. 교회 마당가에 심긴지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 감이 많이 열리는데 올해는 이백여 개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여름철의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한 개도 남지 않고 모조리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정성을 다해 키운 감인데 하나도 남지를 않았으니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떨어진 감들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업처럼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이야 괜찮겠지만, 이 일이 주업인 농부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태풍이나 추위에  과일이 다 떨어지고 얼어서 아무런 상품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한 해 살림살이를 망친다면 그것처럼 속상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2020년이 저물어가는 마지막 달입니다. 이맘때면 다들 올해 무슨 열매를 맺었는지 돌아보고 계시겠습니다. 저는 대봉감을 잃은 것도 그렇지만 왠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좋은 종자나 씨앗을 심어도 좋은 열매가 맺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많은 장애물 때문입니다. 병충해를 비롯해 이상기후현상이나 가라지가 덮치는 일 등으로 인해 열매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정성을 다하면 종자나 씨앗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6~7절에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은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었고 삼 년 동안 잘 가꾸었는데 열매가 없자, 과원지기에게 이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과원지기는 “주인이여 올해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나무 주위를 두루 파서 거름을 넣고 잘 가꿀 테니 기회를 주소서. 그리해도 열매가 없으면 그때 찍어 버립시다.” 라고 제안을 합니다. 


  이 본문에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과원지기는 예수님을 비유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우리를 열매가 없어도 또 한 번의 기회를 누리도록 간청하는 과원지기인 예수님 때문에 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바라봅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낙엽 진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을 맞이할 나무들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녹음을 이루던 여름날 잎들이 오색찬란한 물감으로 옷을 입고 그 자태를 뽐내더니 이제 낙엽 되어 계곡을 덮고 시달려 부스러진 가루가 되어 한 줌 거름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삶. 또 다른 내일의 열매를 위해 거름으로 돌아가니 사라짐은 열매를 위한 밑거름이 됨을 생각합니다. 낙엽을 보면서 쓸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열매를 키우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 앞에 새로운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는 사라짐이 아니라 헌신이며, 다음을 위한 물러남이요, 내일의 희망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살다간 자리, 그가 남긴 흔적은 왜 이렇게도 추하고 냄새가 나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성숙의 열매는 어디서 맛볼 수 있을는지. 한 해를 접어보는 지금, 썩어지는 낙엽 되어 열매를 만드는 거름이 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발행인 옥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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