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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에 사람들을 만나면 기독교와 크리스천의 문제점들을 이야기 하곤 한다. 


  그 이유 중에 첫 번째가 권위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그런데 모든 종교는 권위의식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형성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권위가 사라진다면 종교적 신앙은 존립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무슨 권위나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권위의식이 신앙의 기반이 되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권위가 없는 종교나 권력이 있을 수 있는가? 권위는 있어야 하나 권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권위가 나에게 오게 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거드름을 피울 때 문제가 되고 세상은 비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남은 것이 아닌가? 


  두 번째 문제는 교회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크리스천의 절대다수는 교회를 떠난 공동체는 생각 할 수도 없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이교회의 존재목적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만의 집단체로 불신자들에게 비쳐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불신을 받는지 모른다. 전에는 교회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동체로 발전을 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단합도 잘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들만의 돌봄으로 불신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들을 감당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들만의 집합체로서 세상과 분리된 단체로 치부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어 진 것이 사실이다. 


  세 번째는 교권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커지고 인원이 많고 재정이 풍부해지면 자연히 뒤따르는 것이 교권주의가 따라 온다. 중세시대가 바로 그런 시기였다. 황제가 교황의 뜻에 순종해야 하며 세상의 법은 교회의법에 따라야 했다. 그 절정이 바로 중세말의 십자군 전쟁이었다. 오늘 날에도 과거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지난 우리의 사회는 정교의 일치적인 일들을 많이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치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보면서 정치와 나란히 어깨를 겨누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 우리가 걱정하고 반성해야 할 일은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신앙적 권력을 정당화는 일이다. 교회가 커지고 교단이 확장되면서 성직자가 교권을 가지게 되면 교권도 권력이기 때문에 타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밑으로 나가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본질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나는 일찍이 이 문제를 안고 고민을 하고 있었던 터라 울산 기독교 연합회의 임원자리에서 다 내려놓고 목회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위대한 결단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이 나에게 별로 어렵지 않다. 왜 오늘 교회가 욕을 얻어먹는지 알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 믿음은 일부의 소수에 의해 일어나는 비리이지 전체는 얼마나 깨끗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맑은 물에 검은 잉크 한 방울만 떨어져도 전체가 검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맑아 질 것을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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