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목회를 하면서 좋은 교회와 성도들을 만난 것은 큰 축복이며 감사할 일이다. 그에 못지않게 좋은 목사님들을 만나 교제하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성도들에게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목회자들끼리 만나 대화하고 교제하곤 한다. 이는 목회의 에너지를 얻는 너무나도 귀중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4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가 끝이 나자 정근두 목사님과 이종관 목사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하늘 같은 선배님들인데 나를 데리고 위로하며 힐링해 준다면서 2박 3일 동안 시간을 함께 보냈다. 거제 해금강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에는 하동으로 이동했다. 하동 물꽃 펜션에서는 같이 밤이 늦도록 라이프 스토리를 나누며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다. 그날 밤을 기억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려고 하고 그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하동에서 그날 밤에 정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곳에서 몇 달간 휴양을 하고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나는 너를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낼 수 없다. 쌀이 없으면 쌀을 가지고 올 것이고 돈이 없으면 돈을 부쳐 줄 테니 제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이곳에서 휴양하여 전처럼 다시 건강을 찾아 일어나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그 덕분에 우리 부부는 3개월 동안 하동에서 벚꽃 피는 4월부터 잘 지내게 되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4년이 지나고 곧 완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는 정 목사님의 초대를 받아 집으로 이 목사님 부부와 같이 갔다. 정 목사님 부부는 맛있는 양고기 다리를 준비해 훈제를 만들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작은 체구의 사모님은 옛날 같으면 앉아서 상을 받으며 지내야 할 나이인데도 여전히 어디서 나오는지 그 열정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전자레인지에 접시를 데워서 음식을 담게 배려해주셨다. 그 배려의 마음은 무엇으로 표현을 하여 감사를 드려야 할지 황송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요 큰 선물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감동을 주고 마음을 울리고 눈물이 나게 하는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인데,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격이다. 우리 사회가 날이 갈수록 칭찬은 사라지고 잘못한 사람이 큰소리를 치는 우스운 세상이며, 지금까지의 상식이 뒤집어지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작은 것들을 소홀히 하면 결국은 큰일을 이루어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남을 섬기는 것과 같은 작은 일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기초윤리나 도덕 시간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초요 정의와 공정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큰일을 해야만 대단한 줄로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모님께서 접시를 데워 대접하는 정성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게 하는 일이므로 작은 일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목이 이슬비를 맞고 자라고 아침마다 내리는 이슬을 먹고 자라가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