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나라(시리아)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이 들어 죽게 되고 그의 직분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포로로 잡아온 자기 집의 소녀가 “우리 고국에는 나병을 고칠 선지자 있다.”고 알려주자 그는 왕에게 가서 허락을 받아 이스라엘로 찾아옵니다. 그를 만난 엘리사는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만 화가 나서 자기의 고국을 돌아가려고 했으나 같이 온 신하들이 만류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왔더니 정말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되고 나병은 나았습니다.
이것이 너무 고마운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하나님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데 종이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강권하며 거절합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본 게하시가 돌아가는 나아만에게 가서 거짓말을 하여 “자기 선생님이 한 달란트의 은과 두벌의 옷을 받아와서 선지생도들에게 주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엘리사는 게하시를 책망하면서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에게 들어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게하시의 잘못을 생각하면 그 정도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 까요? 거짓말하여 나병이 걸렸다면 우리 모두는 다 나병환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무 중한 병에 저주를 받은 게하시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아무리 되짚어 생각해 봐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과 제 관계가 고작 이 정도였습니까?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이 엘리야 선생님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셨듯이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랐고 충성스럽게 모셨습니다. 선생님도 저를 특별하게 대우를 해 주셨지요. 언젠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고칠 때 지팡이를 가져가라고 저에게 특별하게 부탁도 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아버님처럼 따랐고 선생님도 저를 아들처럼 대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저를 내치실 만큼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것입니까? 그냥 내치신 것도 아니요 나병에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조금 잘못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제가 선생님의 이름을 팔아서 나아만 장군에게 옷 두벌과 은 두 달란트를 받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고 잘못이 되나요? 당신의 수제자인 나를 나병이 걸리게 할 만큼 중죄입니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나고요. 왜 내 앞에서 거짓말을 했나고요? 정말 모르십니까?
우리들의 형편을 모르시는 선생님이 참으로 무정합니다. 여기서 같이 공부하는 수련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배고프게 추위에 떨며 고생 고생하는지 모르시나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당연히 받아도 될 그 예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나아만 장군에게 가서 이미 우리를 줄려고 가져온 것이기에 조금 부탁을 했지요. 선생님은 선생님이시니까? 악역을 못하시겠다고 하면 저라도 해서 우리 신학생들을 살려야지요. 그렇다고 제가 양심 없는 짓을 했나요.
선생님의 이름을 팔기는 했지만 하지만 저가 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옷 두벌과 은 한 달란트를 달라고 하니까 나아만이 억지로 은을 두 달란트 주기에 받아 와서 부하 둘을 시켜 저의 집에 까지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선생님이 나에게 나병을 걸리게 하셨을 때 다른 수련생들에게 일침을 주시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고쳐주시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를 그냥 내버려두시고는 평생을 나병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대대로 가문을 이어서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어찌 그리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그 잘못하나로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드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의 안위를 위해서 한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선생님, 속 시원하게 말씀을 좀 해주세요. 선생님은 저를 성경에 기록하셔서 대대로 비난 받는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까? 마치 욕심을 내어 자기 것을 챙긴 사람인양 오해를 받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만약에 내가 게하시였다면 이렇게 항의를 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보다 더 격하게 항의를 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게하시가 그토록 큰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조금 사례를 받은 게하시가 잘못이라면 오늘날의 목회자와 선교단체, 기도원이 선교비를 요구하는 것은 모두 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어떤 교회는 임직 장사를 하고 특별한 물을 팔아 장사하고 기도해서 얻은 물이라고 선전하며 판매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가치를 매길 수 없으니 비쌀수록 좋다고 하여 팔아 선교하는 단체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게하시는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가 말입니다.
이 본문에는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가르쳐 주고자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없는 하늘나라의 가치입니다. 시리아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삶의 원리,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있는 원리로써 그 가치는 값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 원리, 즉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것임을 경험하도록 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나아만에게 가르쳐주기를 원했는데 그만 게하시가 그 원리를 훼손시키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왜곡시킨 죄’ 이것이 바로 게하시의 죄명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돈으로 세상의 가치로 바꾸어버린 죄’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거룩한 분노를 발하게 하시며 형벌을 내리실 수밖에 한 게하시의 잘못입니다.
발행인 옥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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