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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지성과 감성

 

  인간이란 지성, 감성, 의지의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지, 정, 의가 잘 균형잡힌 사람을 우리는 인격적인 사람,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서구인들은 대체적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에 우리 동양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가깝다고 한다. 일제치하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경계인으로 생을 보낸 윤치호는 “우리민족은 10%정도는 지성으로 판단을 하고 90%는 언제나 감성적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정에 약한 민족”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성경적 지식과 따뜻한 감성과 굳건한 의지로 일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신다. 참으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찬 받았던 다윗도 한때는 추한 인간의 본능적 욕망의 늪에 빠졌었다.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하고 그 남편을 살인하고 이 모든 것을 은폐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버리고자 했으나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는 부끄러워 자살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죄악을 고백 하고 눈물로 요를 적시면서 회개를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다시 세워 주셨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없어서는 안 될 그리스도 탄생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모델 왕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런 지도자가 없다. 잘못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법의 평가를 받고 용서를 빌고 다시 일어서게 될 때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후손들에게도 교훈과 본이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 사람인지라 살다보면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의 사회를 보면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시장을 지낸 사람도, 자기의 수치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너무 쉽게 한다. 물론 자살인지 자살 당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살한다고 죄가 묻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소위 좌파이면서 사회주의 유물론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내세를 살 영광된 몸임을 알지 못하기에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감성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해도 자살해서 죽고 나면 마치 그것으로 죄를 속량이라도 한 것인냥 쉽게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그 죽음을 미화시키고 영웅시 하기도 한다. 윤치호의 말처럼 지성보다는 감성적 민족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만일 한 사람, 한 사회, 한 국가의 잘못과 죄악을 청산하지 못하고 그대로 덮어 버린다면 결국 그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폼페이처럼 종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받고야 말 것이다.


  공산주의 유물론 국가인 중국이 작년에 우한의 교회당을 불태우고 교회 지도자들을 구속하고 탄압하더니 코로나19가 우한서 최초로 발병해서 전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고, 주먹보다 큰 우박피해, 돼지역병과 메뚜기떼 엄습, 40여일간의 대홍수로 4천 만 명 이상 이재민 발생과 농경지 침수에 양쯔강 범람과 산샤댐 붕괴 우려 등 이 모든 재난이 어찌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기에 영의 세계를 모르고 육의 세계만을 강조하면 앞으로도 계속 사악한 세상으로 더욱 타락하여 역사에 사라진 소돔과 고모라 폼페이의 날이 계속될 것이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이 땅을 덮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진핑도, 김정은도, 김정은을 추종하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거짓된 사상과 종교들은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수 없는 거짓 학설들로 인간의 삶을 속여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거짓 학설은 죽음이 모든 것의 종착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말에 속지를 말아야 한다. 인간이 이런 거짓에 속고 있는 이유는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인 것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감성을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감성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지, 정, 의의 올바른 인격자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발행인 옥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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