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계/교계일반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얼마나 사시는가!”

  부활절 이후, 우리 앞에 놓인 성령강림절은 단순한 교회의 절기가 아니라, 하늘의 생명이 이 땅의 그릇들 안에 쏟아진 ‘생명의 분기점’입니다. 성령강림절을 통하여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며 교회의 참된 본질에 다시 생각해 봅시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들이 모여 규약을 만들고 단체를 조직한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지체들 속에 들어오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유기적으로 산출된 사건입니다.(행2:1-4)  

  참된 교회는 사람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교회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성령의 주권적인 통치보다 ‘인간의 경영’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세련된 프로그램, 화려한 건물, 치밀한 마케팅이 성령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오늘날의 교회에서 성령을 거두어 가신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활동이 멈추게 될까요? 슬프게도 많은 교회는 성령 없이도 여전히 ‘조직’으로서 잘 돌아갈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비극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몸인가, 종교적 상점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타남’입니다. 교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머리가 되셔야 하며, 모든 지체는 그분의 생명에 의해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점차 ‘종교적 서비스의 제공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생명의 공급을 갈망하는 지체가 아니라, 더 나은 환경과 위로를 찾아다니는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사역자들 또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통로이기보다, 조직을 관리하고 회원을 유지하는 관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한 성령을 마시는 것, 즉 그분의 생명을 공유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섞일 때 교회는 더 이상 유기적인 몸이 아니라 죽은 조직이 됩니다.

  성령강림절을 앞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라, ‘십자가의 깊은 처리’입니다. 겉사람이 죽지 않은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은 육신을 비대하게 만들 뿐입니다. 오순절의 역사는 자신들의 무능함을 철저히 깨닫고 오직 주의 약속만을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썼던 120명의 성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숫자의 부흥을 자랑하지만, 정작 십자가 밑에서 자기 부인을 경험한 ‘생명의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이 시간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일을 하느냐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얼마나 사시느냐를~

  교회의 탄생은 하늘의 생명이 땅의 인간들을 삼킨 사건이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며, 우리는 현대 교회의 화려한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다시 ‘다락방의 가난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 그것이 교회의 유일한 기초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내려놓고 오직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증거’로 회복될 것입니다.

  주여, 우리 못된 자아를 죽이시고 오직 당신의 영으로만 충만하게 하소서. 교회가 조직이 아닌 당신의 살아있는 몸이 되게 하소서. 아멘

편집국